[천자칼럼]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이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일 당시,뉴욕 타임스의 평가는 무척 냉소적이었다."무대기술은 뛰어나지만 가사와 안무는 단조롭다"고 깎아내렸다.그러나 이런 평가와는 달리 이 작품이 공연되는 머제스틱 극장 앞은 연일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오페라의 유령은 공연만으로 끝나지 않았다.짜임새 있는 구성,복고풍의 환상적인 무대장치에다 감미로운 아리아에 감동한 관객들은 팜플렛과 카세트는 물론이고 작품의 로고가 새겨진 T셔츠,머그컵,모자,열쇠고리,마스크,포스터,심지어는 초콜릿마저도 마구 사들였다.작품에서 받은 흥분이 오죽하면 이럴까 할 정도였다.이 오페라의 유령이 지난 주말 브로드웨이 공연 20주년을 맞았다.2년 전 '캣츠'를 제치고 최장수 뮤지컬로 등장하더니,이제는 20년 공연이라는 전무후무한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운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공연계에서 신기록이다.8000회를 돌파해 1만회 공연을 향해 질주중이며,관객 수와 해외공연에서도 기존의 작품들을 따돌렸다.특히 판매 수익 6억달러는 영화까지를 통틀어도 사상 최대 기록이라고 한다.명실공히 세계 문화상품의 대표로 자리매김했으며,그 부가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오페라의 유령 외에 캣츠와 미스 사이공,레미제라블도 공전의 히트를 쳤다.세계 4대 뮤지컬로 불리는 이 블록버스터 작품들은 나름대로의 특색을 갖고 뮤지컬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뛰어난 가창력,놀라운 무대기술과 감명 깊은 곡들이 어우러져 격조있는 뮤지컬로 거듭난 것이다.최근 몇년 새 국내에도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기는 한데 창작 뮤지컬은 황무지나 다름없다. '명성황후'가 뉴욕과 런던에서 호평을 받아 후속 작품을 기대했으나,아직 주목을 받는 뮤지컬은 나오지 않고 있다.자본동원이라는 걸림돌을 극복하고,뮤지컬에서 문화강국의 면모가 과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