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의결권 제한 없어지나 … 대기업 집단 지정제 폐지될듯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을 경쟁촉진 조항과 경제력집중억제 조항으로 구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경제력집중억제 부분은 금융관련법이나 증권거래법 등으로 넘기고 공정거래법을 순수한 의미의 경쟁촉진법으로 전환한다는 대선 공약을 지키려는 취지다.이는 경쟁당국이 맡아왔던 대기업집단지정제도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주목된다.

인수위 관계자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를 계기로 공정거래법을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순수한 의미의 경쟁법 부분과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경제력집중억제 조항으로 나누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를 근거로 공정거래법을 경쟁촉진법으로 개편하는 것이 새 정부의 경제 분야 중점 추진 과제로 설정됐다"고 27일 밝혔다.

◆분류작업 뭘 의미하나공정거래법에서 경제력집중억제 조항은 대부분 대기업집단지정제도를 근거로 지정된 그룹에 상호출자·채무보증 금지,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대규모 내부거래 공시,비상장회사 정보 공시 등의 행위 제한 및 의무를 가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경제력집중억제 부분을 공정거래법에서 떼어 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대기업집단지정제도는 개별 규제 근거를 잃고 자연스레 폐지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 관계자는 "기업 지배구조를 정부가 문제 삼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고 설령 한국적인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공정거래법에 규정할 사안은 아니다"며 "경제력집중억제 관련 조항들은 개별 규제의 경중을 따져 없앨 것은 없애고 일부는 금융관련법이나 증권거래법으로 분산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1987년 자산총액 4000억원 이상인 32개 그룹 509개 계열사를 지정하면서 도입된 대기업집단지정제도는 1993년 '30대 그룹 지정제도'로 바뀌었다가 2002년부터는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의 그룹을 공정위가 매년 일괄 지정해 일률적인 규제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기업집단지정제도는 "일정한 자산 규모 이상이라는 자의적이며 논리적 근거가 없는 지정 기준으로 승자를 처벌하는 규제(한국경제연구원 규제개혁 종합연구)"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개별 규제 조정 방향은 미정새 정부에서 공정거래법이 순수한 의미의 경쟁촉진법으로 전환됨에 따라 이제 관심은 '덩어리 규제'로 지적돼 온 대기업집단 행위 제한 규제들이 어떻게 조정될 것이냐로 모아지게 됐다.

인수위 관계자는 "경제력집중억제 규제들을 경쟁당국이 집행한다는 점과 일정규모 이상이라고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규제 체계 등이 문제인 것이지 대기업집단지정제도 아래에 놓여 있는 개별 규제들이 전부 필요 없다는 차원은 아니다"며 "각각의 규제들은 필요성을 따져 다른 법에서 보완할 것이기 때문에 법 분류가 당장 상호출자 허용이나 금융계열사 의결권 행사 가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는 개별 행위 규제의 대폭 완화 없이 단순히 법 조항만 나누는 차원이라면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특히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하는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재계 한 관계자는 "외국계 금융사와 동등하게 규제를 풀어주면 삼성전자 등 우량기업이 적대적 M&A(인수·합병)의 위협에서 상당 부분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