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참여정부, 유종의 미(美) 거두려면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

우리나라는 10년간 두 차례에 걸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문명충돌론'의 헌팅턴은 국민의 투표에 의해 두 번의 정권교체를 이룩한 국가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발돋움한다고 했다.이달 25일이면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한다.참여정부로서는 집권 5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달이기도 하다.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아름답게 퇴장하는 참여정부이기를 기대해 본다.하지만 이 같은 국민적 기대가 어긋나고 있다.인수위와 청와대가 심한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표면적으로는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이견(異見)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앞세운 신권력과 그들의 가치를 지키려는 구권력 간의 기(氣) 싸움 양상을 띠고 있다.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의 정치 공간 확보와 4월 총선을 대비한 세력결집의 포석이 아닌가도 싶다.

정부조직개편안 공방(攻防)은 노 대통령이 개편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면서 촉발됐다.떠나는 대통령이라 하여 '소신과 양심'에 반(反)하는 법안에 서명을 요구하는 일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그러나 대통령은 개인적 소신과 양심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다.청와대의 논리대로라면,정부조직개편안을 만든 인수위와 이를 논의하는 의원들은 소신과 양심이 없는 집단이다.자신이 견지한 가치와 철학만이 선(善)이라는 '확신편향'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허물고 부수는 데 서명하라는 것은 그동안 참여정부가 한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바꾸는 일에 동참하라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그리고 정부조직개편안을 통해 '참여정부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그같은 해석은 설득력이 결여돼 있다.참여정부가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이 권력을 위임했기 때문이다.따라서 국민이 권력을 거둬간 이상 참여정부는 '지난 5년'을 성찰해야 한다.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허문 것은 인수위가 아니고 참여정부를 준엄하게 심판한 국민인 것이다.누구도 참여정부의 흔적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참여정부의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변론하지 않아도 역사가 이를 평가할 것이다.더 이상 스스로를 '약자'로 자학하지 말아야 한다.노 대통령은,국회만 믿고 새 정부 구성을 준비했다가 낭패를 보게 될 수도 있어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조직개편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는 건 국회의 자율권과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거부권이 의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선제적' 통치행위가 돼선 안 된다.또한 새 정부 들어 정부조직을 개편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새 정부 들어서기 전에 조직개편을 꾀하는 것 역시 빠르지 않다.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의 인수위를 거론하지만 상황이 다르다.국민의 정부 때는 IMF 비상시국이었으며 참여정부는 정권연장이었기 때문에,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는 지금과 비교할 이유는 없다.

청와대는 '작은 정부'가 정부의 행정서비스와 사회통합 기능 측면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고 비판한다.그러나 공무원 숫자와 행정서비스의 질은 무관하다.'위원회'를 많이 설치해야만 사회적 갈등이 조율되는 것도 아니다.정부역할 축소와 시장기능 확대는 세계적 트렌드이며 선진한국을 위한 '시대정신'이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선택을 받들어 새 정부로의 정권이양에 적극 협조해 '유종의 미(美)'를 거둬야 한다.그 길이 후일 새로운 진보 정치세력으로 재기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새 정부와의 자존심 대결은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만약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끝까지' 실패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사)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