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예고된 방재시스템 오작동

조원철 < 연세대 교수ㆍ사회환경시스템공학 >

뉴스를 보던 중에 속보로 방영되는 숭례문의 소식에 "또 일어났구나"가 나의 첫 반응이었다.새벽까지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나는 "광화문에 있는 정부종합청사에도 스프링클러가 없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겨우 1층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는 상황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비상 통로는 아예 부속실 등 다른 용도로 전용되고 있는 게 대한민국 심장부 종합청사의 안전의식 현실이다.

예산과 기준을 들먹이며 책임 전가에 정신이 없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국가 관리가 무엇이며,진정한 국민 복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대책이 없어서 문제 되는 게 아니다.

의사 결정의 가치를 판단 못하는 기본이 잘못된 것이 문제다.

우리가 그렇게도 자랑하던 IT(정보기술),혁신,법조문,매뉴얼,그 모든 것은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는지 참담하다.국보 1호를 지키지 못하면서 다른 것들을 지킨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목에 힘 줄 기관(청) 만드는 데만 온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1호쯤은 없어져도 괜찮다는 것인가.

사찰 문화재보다도 방재안전 관리나 보수보강 서열이 낮았다니 그 서열은 누가 매겼다는 것인지? 할 말이 많은 문화재 전문위원회가 아니었을까.메뉴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규정이 있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생색 나는 업무는 너도나도 맡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주 잘해야 본전(?)인 방재안전 관리 업무는 기피 부서가 된 지 오래다.

의사 결정권을 가진 높은 자리에 이를수록 병과(전문성)가 없어진다는 속설은 어떻게나 그렇게 잘 들어맞는지 말이다.

일선 소방관리 기관마저도 설계도면 한 장 없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누가 그 구조를 알고 즉각 행동으로 방재 활동을 할 것인가?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도면을 볼 수 있는 정도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게다.

평시에 눈에 익혀두어 상황 발생시에는 습관적 행동으로 방재할 수 있어야 한다.

설계도면의 가치만 따져서 문화재청만 보관해야 한다는 논리는 어떻게 정립된 것인지? 이처럼 가장 기본인 설계도면도 확보되지 않은 소방관서라면 직무 유기이다.

예산과 규정을 더 이상 따지지 말자.하위 기관의 업무를 못하게 하였다면 업무 방해죄다.

최근의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다를 바 없다.

지금까지 모든 점검에서 '만사 OK'였음이 분명하다.

재난은 현장에서 발생한다.

모자라기는 하지만 도상 훈련이라도 한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붕 위로만 물을 쏟아붓는 진화 방식도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아래에는 화염이 더해가고 있는데도 지붕 위로만 물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잘려져 길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 숭례문 편액은 어떻게 되었는지? 가슴 졸이는 궁금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많디 많은 소방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분말식 소화기는 개선해야 한다.

고성능 액체 소화액으로 국지적 소화 장치라도 시설했더라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장의 화염에 가슴 졸이는 중에도 재난방송 주무사인 KBS 1TV에서는 연속극이 계속 방영 중이었다.

이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방재안전 관리를 언제까지 경제성이 아니라 금전출납부 개념으로만 계속하여야 하는 건가.

진정한 경제성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반짝'인 안전 의식은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책임만 물을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일할 수 있는 기본마저도 갖춰 주지 않은 현 시점에서 처참한 장면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00년 된 보물도 이러한데 '30~40년 된 건물쯤이야'라는 비탄이 현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