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규 대표 "가방끈보다 중요한게 현장서 맺는 인연"

이종규 대표 "가방끈보다 중요한게 현장서 맺는 인연"
지난 13일 서울 잠원동 롯데햄 대강당은 임직원 100여명의 아쉬운 박수 소리로 가득했다.임기 1년을 남겨둔 이종규 롯데햄 대표(64)가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다.이 전 대표는 신격호 그룹 회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작년 6월 사표를 제출하고 정기인사에 맞춰 이날 가방을 쌌다.

그는 "CEO를 10년 넘게 맡아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나 자신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또 "남이 밀어내서 나가는 것보다는 박수받을 때 떠나는 게 명예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도 덧붙였다.이 전 대표는 상고를 졸업한 뒤 말단사원으로 롯데에 입사,대표이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롯데에만 40년 이상 근무해 그룹 내 최장기 근속자이기도 하다.홀어머니 밑에서 고학으로 마산상고를 졸업하고 롯데에 입사한 그에게는 고졸 출신이란 점이 항상 약점으로 남아있었다.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보다 적게 자고 많이 뛰며,끊임없이 연구했다.일류대 출신 입사 동기들이 학맥을 이용해 전화 한통으로 일을 해결할 때 이 전 대표는 몇 번이고 당사자들을 찾아다녔다.특히 그가 CEO까지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솔선수범이었다."나는 일을 이론이나 말로 하지 않고 몸으로 했습니다.영업이건 생산이건 언제나 현장에서 답을 얻었죠."

이 전 대표의 별명은 '수도승'으로 통했다.학벌의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술ㆍ담배도 끊고 커피숍에 널브러져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없었다.사장실도 투명한 유리방으로 만들어 누구나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사무실에서 졸지 않기 위해 사장실 소파도 치워버렸다.한번은 롯데제과에 있을때 동창회에 나가 노래 부를 차례가 돌아오자 회사 CM송을 불러 애사심을 보이기도 했다.

롯데삼강 대표와 부산롯데호텔 대표,롯데햄ㆍ우유 대표 등을 거친 그는 작년 롯데햄우유를 롯데햄과 롯데우유로 분리하는 것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겼다.이 전 대표는 최근 퇴임에 맞춰 40여년 '롯데맨' 생활 경험을 담은 책 '나는 하루를 불태웠다'(이지출판)를 펴냈다.이 책에는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직장생활에서 체득한 성공전략 10가지를 조목조목 잘 정리해 놨다.롯데 둥지를 떠나는 이 전 대표는 "나처럼 학벌이 부족해 사회적 편견에 갇힌 후배들에게 강연 등을 통해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다"고 인생 2막의 활동 계획을 밝혔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