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2) 진미식품 ‥ 60년 익은 '장맛 3대'

1대 故송희백 회장 ‥ 병뚜껑 안쪽에 경품번호 '화제'
2대 송인섭 회장 ‥ 80년대 후반 업계1위 이끌어
3대 송상문 사장 ‥웰콩 시리즈로 제2전성기 다짐


"장맛처럼 진실한 게 또 있을라구… 음,맛이 됐네." 13년 전 TV에 등장한 진미식품 '참그루' 고추장 광고는 광고업계에서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광고 유형을 꼽을 때 아직까지도 자주 인용된다.창업주 고 송희백 회장(1999년 타계)과 아들(67.송인섭 회장)이 함께 출연해 대를 이어가며 장맛을 지켜가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 송 회장이 중절모를 쓰고 고추장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는 모습은 장인의 이미지 그대로다.

최근 이 회사가 만든 제품을 보면 '장맛 3대'라는 로고가 인상적이다.1997년 입사한 송 회장의 아들 송상문 사장(37)이 지난해 회사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뀔 동안 한우물을 파며 이름을 알려온 이 회사는 긴 세월 쌓아온 노하우와 젊은 사장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최근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50년대부터 경품행사.브랜드광고 도입

진미식품은 해방 후 혼란기에 설립됐다.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생활이 궁핍한 데다 이동도 잦아 장을 담글 여력이 없었다.1930년대 후반부터 간장을 만드는 일본인 회사 '부사충장류'에서 장 담그는 기술을 익혔던 고 송 회장은 이에 착안,1948년 일본인 사장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에 진미식품의 전신인 '대창장류사'를 세워 장류를 생산해 팔기 시작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1950년 갑자기 한국전쟁이 터졌다.전쟁통에 집을 떠난 피난민이나 포탄을 맞아 장독이 부서져 버린 주민들이 너도나도 '송사장네 장도가'를 찾았다.가게 바깥에 간장을 담아가기 위해 빈 정종병 하나씩 품에 안은 사람들이 언제나 100m 이상 줄을 서 있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수요가 폭증하는 시장 상황을 타고 회사는 쑥쑥 커갔다.특히 고 송 회장이 일찌감치 브랜드의 중요성을 알고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활용한 것이 적중했다.

"선대 어르신(고 송 회장)께서는 시장을 보는 감각이 굉장히 뛰어난 분이셨습니다.창업 2년 뒤인 1950년 대전일보에 업계 처음으로 '진미' 브랜드를 알리는 광고를 내기 시작했고,1959년에는 병뚜껑 안쪽에 경품번호를 써넣는 사은행사를 했어요.1등은 미싱을 줬는데 경찰 입회 아래 군중을 모아놓고 추첨을 했죠.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방법이지만 당시엔 듣도보도 못한 획기적인 마케팅이었습니다."(송 회장)

◆품질.맛 노하우로 한때 업계 1위까지 올라

진미식품의 최전성기는 1980년대 후반이었다.진미간장,진미고향고추장,진미일품콩된장 등 '진미'가 붙은 제품 대부분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배합비율과 숙성시간 등에 대한 미묘한 노하우가 쌓여 맛이 좋은 데다 된장을 만들 때 쌀이나 보리를 섞지 않고 콩 100%로 만드는 등 품질을 중시한다는 점이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었다.최대 매출액이 연간 400억원을 넘었을 정도였다.당시 경쟁업체는 샘표식품과 삼원식품 등이었다.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1990년대 후반부터 급작스런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시판되는 고추장에 불량 고춧가루를 사용했다는 방송 보도(1996)가 1차 원인이었다.송 회장은 "법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이나 품질 이상은 전혀 없었다"며 "고추장용 고춧가루와 일반 음식용 고춧가루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 보도였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악재는 계속됐다.이듬해 외환위기의 한파가 몰아닥쳤다.더구나 1990년대 후반부터는 대상(청정원),CJ(해찬들) 등 유명 대형식품회사들과 경쟁을 시작해야 했다.유통업계도 대형 할인매장 위주로 재편되면서 중소기업 제품 '참그루'는 입점 가격,매장 진열 등에서 차별을 받기 시작했다.


◆신영역 개척… 2013년까지 1000억원 매출 목표

회생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3대 송상문 사장이다.그는 입사 후 10년간 회사의 체질을 현대식으로 뜯어고치는 일을 도맡았다.온라인 쇼핑몰(ebitto.com)을 만들고 전자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한편 벤처기업.이노비즈 인증을 받았다.

또 기술개발에만 전념하던 연구개발(R&D)팀에 시장 수요조사 기능을 부여해 새로운 수요를 발견하는 즉시 제품 개발에 착수하도록 했다.이 시스템을 통해 출시된 100% 국산 오곡찹쌀고추장 및 100% 국산 콩메주로 담근 오덕청국된장 등은 웰빙 바람을 타고 시장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이 결과 2005년까지 10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던 회사는 2006년부터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다.7년간 200억원대에 머물러 있던 매출액도 2004년 이후 300억원을 넘어섰다.

송 사장의 야심작은 지난해 사장 취임 이후 시작한 '웰콩 시리즈' 사업이다.장류 사업과 별도로 장을 만드는 주원료인 콩의 건강한 이미지를 살려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간식제품군을 선보이겠다는 것.지난해 7월 출시한 발효콩과자 '나또볼'이 대표적이다.국산콩과 우리밀,올리브유로 만든 이 과자는 기존 청국장환 등과 전혀 다른 식감으로 매달 2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송 사장은 "대기업과 싸우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장류에서는 발효의 참맛을 담은 아주 고급스러운 프리미엄 제품을,간식류에서는 맛있고 건강에 좋으면서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노하우가 담긴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2013년까지 웰콩 시리즈와 장류제품 각각의 영역에서 500억원씩의 매출을 올려 진미식품에 제2의 전성기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