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허브' 명함도 못 내민다

59개 도시중 51위…사실상 꼴찌
참여정부는 5년 전 출범과 함께 서울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제시했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국정 구상을 통해 "한국이 그것(금융허브) 안 하면 죽게 생겼다"고도 말했다.하지만 그로부터 5년 후 한국의 금융허브 경쟁력은 세계 꼴찌권이란 충격적인 성적표가 나왔다.

29일 영국의 금융특구인 시티 산하기관 '시티 오브 런던 코퍼레이션'이 발표한 '전 세계 금융센터지수(GFCI)'에서 서울은 전체 평가대상 59개 도시 중 51위를 차지했다.지난해 9월 조사 때의 42위보다 9단계 추락한 것이다.사실상 세계 꼴찌 수준이란 평가다.참여정부의 금융허브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에 그쳤다는 지적이다.성장률 연 7%,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위 경제대국 진입을 골자로 하는 '747공약'을 세우고 이를 위해 금융허브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비전 달성에도 암운을 드리우는 대목이다.

GFCI는 전 세계 금융산업 종사자 1236명과 금융사 1만7642개를 대상으로 각국 주요 금융허브의 △규제 세제 등 비즈니스 환경 △종사자 경력과 능력 등 인력 수준 △교통 등 기반시설 △무역 개방도 등 시장 접근성을 종합 평가했다.지난해 3월 처음으로 발표된 이후 반기마다 순위를 내놓고 있다.

영국 런던이 지난해 9월 조사에 이어 다시 1위를 차지했다.이어 미국 뉴욕이 2위로 뒤를 쫓았다.아시아의 대표적인 금융센터인 홍콩과 싱가포르가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했다.일본 도쿄도 9위에 이름을 올렸다.이 밖에 아시아권에선 두바이(24위) 상하이(31위) 바레인(39위) 베이징(46위) 카타르(47위) 뭄바이(48위) 오사카(50위) 등이 순위권에 올랐다.향후 2~3년 안에 가장 성장성이 높은 금융허브로는 두바이가 1순위로 꼽혔다.이어 상하이 싱가포르 몰타 베이징 등의 순이었다.서울은 공식 발표된 세계 금융허브 '톱 50' 명단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다만 참고자료로 첨부된 '순위 외 국가'에 51위로 겨우 이름을 올렸다.서울의 금융허브 경쟁력은 바레인이나 베이징,오사카에도 뒤진다는 평가다.서울보다 밀리는 곳은 브라질 상파울루,체코 프라하,폴란드 바르샤바,러시아 모스크바,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에 불과했다.

한국 정부는 2003년 12월 동북아 금융허브 3단계 로드맵을 만들어 지난 4년간 1단계인 금융허브 기반 구축 작업을 마치고 올해부터 2단계인 금융허브 완성 작업에 들어갔다.2015년까지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 도약한다는 목표다.하지만 경쟁국은 뛰는 데 비해 한국은 걷는 수준이어서 금융 허브 경쟁력은 갈수록 뒤처지는 실정이다.

국내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금융허브에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추진 속도가 경쟁국에 비해 느린 데다 규제와 전문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있다"며 "과감한 규제 개선과 금융사의 국제화 수준을 높이도록 정부 차원의 드라이브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