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늘근도둑 이야기' 대박 행진

"저는 이 작품에 '무임승차'한 것 뿐이에요.

영화는 감독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만 연극은 배우들의 힘이 절대적인 것 같습니다.연극 연출자는 배우들의 연기가 물이 오를 때까지 지켜보고 또 격려할 뿐이죠."

지난해 영화 '화려한 휴가'로 700만명 관객을 동원한 김지훈 감독(37)이 이번에는 연극 연출자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

그가 맡은 첫 연극은 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에서 지난 1월4일부터 공연 중인 '늘근도둑 이야기'.1989년 초연 이후 세 차례나 앙코르 공연된 이 작품은 매일 보조석까지 팔릴 정도의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 대학로 연극의 객석 점유율이 50∼60%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인기다.

지난 2일까지 유료 관객수 1만4800여명을 모았다.당초 3월9일 막을 내릴 예정이었지만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오는 13일부터 두 달간 연장 공연까지 하기로 했다.

새 대통령 취임 특사로 풀려난 두 늙은 도둑이 마지막 한 탕을 위해 우연히 '그 분'의 집에 잠입한 뒤 미술품 금고를 진짜 '금고'로 착각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았다.

신정아 스캔들,BBK 주가조작사건,국세청장 뇌물사건 등이 거론되면서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일단 재미있다는 게 공통된 평가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상업영화 감독인 만큼 재미를 살리는데 중점을 둔 것도 사실입니다.

풍자적인 요소가 약해진 것을 보고 너무 가벼워진 것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으니 당연한 것 아닐까요."

김 감독의 연극계 데뷔는 평소 친분이 두터운 배우 조재현씨 덕분이었다.

조씨는 '늘근도둑 이야기'의 프로그래머(총괄제작자).김 감독의 2004년 영화 '목포는 항구다'에 주연으로 출연한 인연도 있다.

"제가 평소 연극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까 재현이 형이 연출을 한 번 맡아보겠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시절 최형인 교수님으로부터 연극을 배울 때부터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늘근도둑 이야기'의 흥행에 대해 꼭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이 작품이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공연 체제로 들어선 것은 분명 잘된 일이지만 관객들이 너무 쏠리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요즘 대학로에서는 극단들이 공연장을 잡기가 참 어려운 데 '늘근도둑 이야기'가 독과점처럼 너무 오래 공연을 하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도 됩니다.

잘은 모르지만 관객들이 좀 더 다양한 공연을 접할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김 감독은 앞으로 연극 외에 CF와 TV 드라마 감독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새로운 경험과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신작 영화는 내년 정도에 시작하겠다는 것.

"지금은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있죠.내년쯤 제작비를 좀 많이 들인 블록버스터급 '재난 영화'를 해보고 싶습니다.이제 한국 영화도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을 중요시할 때가 됐죠."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