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3) 성남기업 ‥ "청화대 목창호는 73년 대대로 우리집안 작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TV에서 성남기업의 '작품'을 한번쯤은 봤을 것입니다.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에 달려 있는 문들은 다 우리가 만들었거든요." 김강배 성남기업 회장(68)은 TV 뉴스 등에서 청와대 내부가 비칠 때마다 대통령 모습보다는 그 뒤에 있는 문이나 창문 틀에 먼저 눈이 간다.

혹여나 흠이 났거나 색이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이다.

성남기업은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청와대 신축 공사에서 목창호 시공을 맡았다.김 회장은 "솔직히 이익은 별로 남지 않았지만 후세에 남길 작품을 만든다는 각오로 만들었다"며 "전 직원이 여름 휴가도 반납하며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1991년 청와대 완공식에서 당시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은 감사패를 자랑스럽게 내민다.감사패에는 '빼어난 기술과 탁월한 기량을 발휘해 역사에 남을 훌륭한 건물을 완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적혀 있다.그는 "청와대가 경무대로 불리던 이승만 대통령 시절 개축 공사에도 선친(故 김태옥 창업주)께서 목공일을 맡으셨다"며 "청와대 목창호 공사는 대대로 우리 집안이 담당해온 셈"이라고 설명했다.인천 서구 석남동 목재가공단지에 자리잡은 약 1만㎡ 면적의 성남기업 본사와 목재창호 제1공장.나무 냄새가 짙게 배인 공장 내부로 들어서면 이 회사의 역사와 전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가 눈에 띈다.'SINCE 1935.'성남기업은 73년째 나무로 만든 문과 창문 창문틀 등 목재 창호를 만들고 있다.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창호 전문 기업이다.김 회장의 부친인 고 김태옥 대표(1982년 타계)가 1935년 서울 이태원 집 마당에서 목수 4명과 함께 시작한 '성남목공'은 현재 직원 250명에 90여개 협력사를 거느린 동종 업계 1위 기업인 '성남기업'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이 회사의 목창호가 들어간 아파트는 2만3000가구.매출도 회사 설립 이후 가장 많은 380억원을 기록했다.김 회장은 "성남기업만큼 오래된 목창호 회사도 없고 한 부문에서 이만큼의 매출을 올리는 데도 없다"고 한다.김 회장은 회사의 장수 비결로 '선대로부터 이어지는 대목(大木.대형 건축물을 잘 짓는 목수)의 장인정신과 기술'을 꼽는다.창업주인 고 김태옥 대표는 서울 일대에서 유명한 목공인이었다.창업 초기에는 솜씨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한옥집에 들어가는 문인 완자문(문짝 살대가 '卍'자 모양으로 된 문)을 주로 만들었다.김 회장은 "살대를 가늘게 만들어 짜맞추는 완자문은 고도의 숙련을 필요로 한다"며 "완자문을 잘 만들기로 소문나서 언제나 일감이 넘쳐났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1966년 한양대 건축학과를 졸업하자마자 회사를 맡았다.그는 "건설회사에 들어가 경험을 쌓고 싶었는데 당시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져서 일찍 가업을 잇게 됐다"고 회고했다.성남기업이 목공소 수준에서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현대건설을 빼놓을 수 없다.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미군 극동공병단(FED)이 발주하는 시설 공사에 참여하면서 현대건설과 인연을 맺었다.FED 공사에서 '성남 목공'의 솜씨를 눈여겨본 고 정주영 회장은 현대건설의 목창호 관련 공사를 대부분 성남기업에 맡겼다.현대조선의 첫 수주작인 그리스 대형 선박에 들어가는 목재 공사도 담당했다.

고 정 회장은 목재와 관련된 일이라면 '성남목공 사장'부터 찾았다고 김 회장은 전했다.그는 "청운동 자택부터 시작해 정 회장 형제의 자택 목창호 공사는 모두 담당했다"며 "믿고 맡기는 만큼 완벽하게 시공해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고 한다.1970년대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면서 이 회사는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렸다.압구정동 아파트를 비롯해 1970년대 건설된 현대 아파트의 목창호를 대부분 납품했다.

공교롭게도 창사 이래 맞은 최대 위기도 현대건설에서 비롯됐다.현대건설이 1978년 설립한 계열사인 현대종합목재에 목창호 공사를 맡기기 시작하면서 이 회사의 물량이 확 줄어든 것이다.김 회장은 "학연 등을 동원해 다른 건설사들의 물량을 어렵사리 따내면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며 "한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면 위험하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1998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외환위기는 성남기업에는 오히려 성장의 기회였다.중소 건설사들의 잇따른 부도로 소규모 목창호 기업들이 문을 닫자 기술 경쟁력을 갖춘 이 회사의 물량이 40% 이상 증가했다.

김 회장은 성남기업의 최대 경쟁력으로 '사람'을 꼽는다.지난해까지 43년간 이 회사에 재직한 최영석 전 기술이사(70)는 독보적인 전통한옥 건립 기술을 보유해 '걸어다니는 문화재'로 불린다.또 현재 60여명의 목공 기술자 가운데 20년 이상 근무한 장기 근속자가 절반을 넘는다.그는 "이들은 선대의 기술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장인들"이라고 자랑한다.

이 회사의 목공 장인들이 1970~80년대에 직접 개발한 기계장비만 10여종.대부분 3~4단계의 생산공정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장비들이다.김 회장은 "아무리 기계화가 이뤄졌다 해도 자재 선정부터 최종 마무리 작업까지 숙련된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김 회장은 향후 성남기업이 100년 이상 존속하는 장수 기업으로 남는 최대 관건으로도 '사람'을 들었다.그는 "대목의 장인 기술을 이어받을 젊은이들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젊은 목공 양성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