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에게 듣는다] 다수가 거는 방향에 베팅하는게 더 위험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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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성이 큰 파생상품 시장에서 로스컷(손절매) 원칙은 기본입니다.일반 투자자들이 이 원칙을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로스컷 기준을 지킨 덕분에 9·11테러 직후의 급락장에서도 수익을 냈습니다.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만이 파생상품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입니다."
하태형 보아스투자자문 대표는 국내 파생시장 1세대에 속한다.
그가 파생상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8년 KAIST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우연하게 찾아왔다.그는 "국내에 파생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한 교수로부터 파생과 관련된 강의를 들었다"며 "수학과 과학 경제 심리가 모두 수치로 나타난 파생시장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그는 이 강의를 계기로 석사과정을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날아가 당시 한국 유학생들에겐 생소한 S&P500 주가지수선물에 관한 주제의 논문으로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 대표는 1991년 공부를 마치고 미국 금융사에 취직할 생각도 했었다.그는 그러나 "당시 미국은 경기 침체에 빠져 현직에 있던 금융인들마저 거리로 나앉는 판이어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다"며 "마침 동양오리온투자증권(현 동양종금증권)이 국내 선물시장 개설에 대비해 파생상품 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한국 파생상품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설명했다.이 회사에서 그가 했던 일이 바로 요즘 주식시장을 좌우하고 있는 프로그램 매매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1996년의 일이다.
그해 5월 코스피200선물이 상장되면서 국내에서도 파생시장이 열렸다.1997년 코스피200옵션이 상장되자 그는 동양증권을 떠나 1998년 LG선물로 자리를 옮겼다.2000년엔 아예 파생상품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페타포투자자문(보아스투자자문의 전신)을 차렸다.그는 "파생시장 여건이 충분히 마련됐으니 이제 직접 실전에 나서고 싶었다"며 당시 심경을 밝혔다.그가 말하는 '파생쟁이'들은 기초자산인 증시의 급변동으로 '먹고 산다'.예측한 방향성이 맞으면 투자원금보다 수만 배까지 수익을 낼 수 있다.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따라서 그는 "파생상품 투자시 항상 양쪽의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리스크 관리로 돈을 잃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하 대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장이 열리지 않는 시간이다."이론적으로 24시간 내내 시장이 열린다고 하면 손실을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장이 끝난 다음엔 무수한 리스크가 존재하죠.따라서 장이 끝나기 전에 매일 양 방향으로 4%의 콜·풋옵션을 동시에 사둬 위험을 관리합니다."
로스컷에 대한 철학도 확실하다."로스컷 기준은 '일 2%,월 0.5%'로 잡고 있습니다.이 기준을 넘는 손실이 나면 무조건 포지션을 정리하고요.시장이라는 게 향후 방향성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로스컷 기준을 넘는 손실이 나면 언젠가 회복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지만 이는 지극히 낮은 확률을 부여잡고 있는 환상일 뿐입니다."그가 파생상품에 투자하면서 가장 손실이 컸던 때는 2002년 12월이었다.정작 그해 발생한 9·11테러 때는 풋옵션에 적절히 포지션을 취하면서 수익을 냈으나,12월엔 급등락을 반복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그는 "코스피지수가 하루 걸러 100포인트씩 아래위로 움직이는데 정말 지옥같았다"며 "하지만 그 당시에도 로스컷 기준을 적용해 한 달 기준으로 마이너스 2%의 손실로 막았고 이후 마이너스 수익률은 곧 회복됐다"고 말했다.
보아스투자자문은 현재 1300억원의 자금을 파생상품에 투자하고 있다.이 가운데 하 대표가 직접 운용하는 파생상품펀드는 100억원 정도.파생상품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규모다."투자대상은 오로지 '코스피200 옵션'입니다.굳이 투자비법이라면 '코스피200 선물'엔 가급적 투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옵션만 가지고도 콜과 풋을 적절히 조합하면 리스크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거든요."
이런 식으로 그가 거둔 수익률은 얼마나 될까.작년 초에 한 기관이 맡긴 30억원은 연간 25%의 수익률을 내고 청산했다.올 들어서도 20억원 규모로 운용 중인 펀드의 수익률이 15%에 이르고 있다.작년 11월부터 하락세를 보인 코스피지수 수익률과 극명하게 대조적인 성과다.
초단위 승부를 다투는 파생상품 시장에만 몰두하다보니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서예를 시작했다는 하 대표는 "이제 파생상품 시장은 새로운 투자기회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파생은 주식과 대체재 관계에 있는데 증시가 2~3년간 약세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란다."현물시장에만 매달리고 있으면 대부분 장밋빛 전망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반면에 파생시장은 현물시장의 등락과 상관없이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을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죠.최근 증권사 자료를 보면 극소수를 빼고는 증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는데 20여년간 '파생쟁이'의 경험으로 볼 때 그럴 경우 100% 하락세에 접어들었습니다."
하 대표는 파생상품 투자자들에게 절대 대다수가 가는 방향으로 몰리지 말라고 당부했다.그는 "파생상품은 주식과 달리 누군가 돈을 벌면 누군가는 그만큼 잃어야 하는'제로섬'시장"이라며 "원자재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말이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하면 상승에 베팅하는 옵션의 가격은 이미 이를 다 반영한 상태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파생상품 시장 1세대' 하태형 보아스투자자문 대표 >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하지만 이러한 로스컷 기준을 지킨 덕분에 9·11테러 직후의 급락장에서도 수익을 냈습니다.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만이 파생상품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입니다."
하태형 보아스투자자문 대표는 국내 파생시장 1세대에 속한다.
그가 파생상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8년 KAIST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우연하게 찾아왔다.그는 "국내에 파생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한 교수로부터 파생과 관련된 강의를 들었다"며 "수학과 과학 경제 심리가 모두 수치로 나타난 파생시장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그는 이 강의를 계기로 석사과정을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날아가 당시 한국 유학생들에겐 생소한 S&P500 주가지수선물에 관한 주제의 논문으로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 대표는 1991년 공부를 마치고 미국 금융사에 취직할 생각도 했었다.그는 그러나 "당시 미국은 경기 침체에 빠져 현직에 있던 금융인들마저 거리로 나앉는 판이어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다"며 "마침 동양오리온투자증권(현 동양종금증권)이 국내 선물시장 개설에 대비해 파생상품 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한국 파생상품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설명했다.이 회사에서 그가 했던 일이 바로 요즘 주식시장을 좌우하고 있는 프로그램 매매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1996년의 일이다.
그해 5월 코스피200선물이 상장되면서 국내에서도 파생시장이 열렸다.1997년 코스피200옵션이 상장되자 그는 동양증권을 떠나 1998년 LG선물로 자리를 옮겼다.2000년엔 아예 파생상품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페타포투자자문(보아스투자자문의 전신)을 차렸다.그는 "파생시장 여건이 충분히 마련됐으니 이제 직접 실전에 나서고 싶었다"며 당시 심경을 밝혔다.그가 말하는 '파생쟁이'들은 기초자산인 증시의 급변동으로 '먹고 산다'.예측한 방향성이 맞으면 투자원금보다 수만 배까지 수익을 낼 수 있다.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따라서 그는 "파생상품 투자시 항상 양쪽의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리스크 관리로 돈을 잃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하 대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장이 열리지 않는 시간이다."이론적으로 24시간 내내 시장이 열린다고 하면 손실을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장이 끝난 다음엔 무수한 리스크가 존재하죠.따라서 장이 끝나기 전에 매일 양 방향으로 4%의 콜·풋옵션을 동시에 사둬 위험을 관리합니다."
로스컷에 대한 철학도 확실하다."로스컷 기준은 '일 2%,월 0.5%'로 잡고 있습니다.이 기준을 넘는 손실이 나면 무조건 포지션을 정리하고요.시장이라는 게 향후 방향성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로스컷 기준을 넘는 손실이 나면 언젠가 회복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지만 이는 지극히 낮은 확률을 부여잡고 있는 환상일 뿐입니다."그가 파생상품에 투자하면서 가장 손실이 컸던 때는 2002년 12월이었다.정작 그해 발생한 9·11테러 때는 풋옵션에 적절히 포지션을 취하면서 수익을 냈으나,12월엔 급등락을 반복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그는 "코스피지수가 하루 걸러 100포인트씩 아래위로 움직이는데 정말 지옥같았다"며 "하지만 그 당시에도 로스컷 기준을 적용해 한 달 기준으로 마이너스 2%의 손실로 막았고 이후 마이너스 수익률은 곧 회복됐다"고 말했다.
보아스투자자문은 현재 1300억원의 자금을 파생상품에 투자하고 있다.이 가운데 하 대표가 직접 운용하는 파생상품펀드는 100억원 정도.파생상품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규모다."투자대상은 오로지 '코스피200 옵션'입니다.굳이 투자비법이라면 '코스피200 선물'엔 가급적 투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옵션만 가지고도 콜과 풋을 적절히 조합하면 리스크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거든요."
이런 식으로 그가 거둔 수익률은 얼마나 될까.작년 초에 한 기관이 맡긴 30억원은 연간 25%의 수익률을 내고 청산했다.올 들어서도 20억원 규모로 운용 중인 펀드의 수익률이 15%에 이르고 있다.작년 11월부터 하락세를 보인 코스피지수 수익률과 극명하게 대조적인 성과다.
초단위 승부를 다투는 파생상품 시장에만 몰두하다보니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서예를 시작했다는 하 대표는 "이제 파생상품 시장은 새로운 투자기회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파생은 주식과 대체재 관계에 있는데 증시가 2~3년간 약세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란다."현물시장에만 매달리고 있으면 대부분 장밋빛 전망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반면에 파생시장은 현물시장의 등락과 상관없이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을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죠.최근 증권사 자료를 보면 극소수를 빼고는 증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는데 20여년간 '파생쟁이'의 경험으로 볼 때 그럴 경우 100% 하락세에 접어들었습니다."
하 대표는 파생상품 투자자들에게 절대 대다수가 가는 방향으로 몰리지 말라고 당부했다.그는 "파생상품은 주식과 달리 누군가 돈을 벌면 누군가는 그만큼 잃어야 하는'제로섬'시장"이라며 "원자재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말이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하면 상승에 베팅하는 옵션의 가격은 이미 이를 다 반영한 상태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파생상품 시장 1세대' 하태형 보아스투자자문 대표 >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