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크리스티 와인 마스터 "양념맛 강한 한국음식, 이탈리아 와인과 어울려"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비싼 와인은 1985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팔린 1787년산 보르도 샤토 르피였다.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소장품이었던 이 와인은 코르크가 말라버려 '잘 숙성된 식초' 상태였지만 미국 포브스 가문은 와인 병에 'Th.J.'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와인 병을 손에 넣기 위해 무려 10만5000파운드(2억원)를 지불했다.

최근 방한한 데이비드 엘스우드 와인 마스터는 이 역사적인 경매의 산 증인이다.1985년 크리스티에 입사해 20여년간 와인 마스터로 일했다.지난 5일 현대카드가 주관한 와인 행사장에서 만난 그는 "와인 낙찰가의 95%는 우리가 예상한 가격대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낙찰가 95%의 적중률을 유지하는 비결은 매년 수천병 분량에 달하는 와인 시음부터 와인의 가계도 추적,현장 조사까지 다양하다.병 상태가 완벽해도 와인 자체는 변질됐을 수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기 때문.그는 "생산자,제조방식,저장 환경을 모두 조사하고 오래된 와인은 시음도 한다"면서 "한 모금에 수천 달러짜리 로마네콩티도 머금었다 뱉는 게 내 직업"이라고 말했다.

매년 수백만병을 사고파는 크리스티의 와인 경매 역사는 242년이나 됐다.유럽에서 와인 무역이 시작된 18세기부터 최상품 와인은 경매로 팔렸다.생산은 제한돼 있고 수요는 많기 때문인데,최근엔 투기 수요까지 가세해 연간 30%의 가격 폭등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엘스우드 와인 마스터는 와인 경매가 투기가 아니라 미래의 즐거움(Future enjoyment)을 위한 투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와인이 좋아서 사 마시는 사람한텐 (와인값 폭등이) 안 좋은 현상이죠.고급 와인을 찾는 사람은 부자 상인도 있고,모험심 많은 전문 투자자들도 있고 다양합니다.

아시아 수요가 늘어나 유럽 미국 아시아에 골고루 분포돼 있는데 홍콩이 40%에 달했던 와인 관세를 아예 없애기로 한 만큼 홍콩이 아시아의 와인 허브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엘스우드와 함께 서울에 온 크리스티의 와인 수석 컨설턴트이자 영국 왕실의 와인 고문인 안소니 한슨은 좋은 와인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곁들였다."비싸고 유명하다고 좋은 건 절대 아닙니다.본인의 입맛과 니즈에 따라 좋은 와인의 정의가 달라집니다.음식에 따라서도 다르고요.어떤 게 내 입맛에 맞는지를 알려면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되도록 많은 와인을 '탐험'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슨 수석컨설턴트는 "한국 음식은 다양한 맛의 여러 가지 요리가 한 상에 올라오는 게 특징인 만큼 한 가지 와인을 골라서 먹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겠다"고 평가했다.다만 양념의 맛이 강한 음식이 많기 때문에 이탈리아 와인과 궁합이 잘 맞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경매는 '3D'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습니다.사망(death),빚(debt),이혼(divorce)이죠.와인 경매에는 네 번째 D인 드링킹(drinking)이 있습니다.좋은 와인을 사서 5~10년을 묵혔다가 최상의 상태로 숙성이 됐을 때 코르크를 따는 바로 그 순간을 위한 것이죠."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