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큰손들 "메릴린치株 사달라"

"거액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최근 1년 사이에 주가가 반토막난 세계적인 투자은행(IB) 주식을 사달라는 주문이 부쩍 늘었습니다."

예탁자산 1조원을 주무르는 현주미 굿모닝신한증권 강남PB센터장은 12일 이른바 큰손 개인들의 최근 투자성향을 이같이 전했다.실제 미국 주식직접거래 서비스를 통해 이미 수억원 정도를 투자한 개인들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그는 전날 미국 증시에서 금융주가 7% 이상 급등하자 "이제는 정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독촉성 문의전화도 이날 여러 통 걸려왔다고 말했다.

거액 개인투자자와 일반 법인들을 중심으로 세계 주요 IB 주식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부쩍 두드러지고 있다.지난해 불거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주가가 급락한 때문이다.

씨티그룹은 52주 최고가 대비 61%나 빠졌으며 메릴린치(-52%)와 모건스탠리(-44%) 등은 절반 수준으로 주저앉은 상태다.

지난 1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긴급자금 투입 결정으로 S&P 금융지수가 7.43% 급등한 것을 비롯해 이들 종목이 6.4~10.9%나 올랐지만 주가 하락률을 좁히기에는 한참 모자란다.이경식 삼성투신운용 펀드매니저는 "지난달 삼성증권 PB 고객들의 요청이 있어 이들 IB 주식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만들어 판매했다"고 말했다.

1인당 1억원 이상만 신청을 받은 결과 전체 3개 펀드에 240억원이 몰렸다.

김우석 굿모닝신한증권 해외주식팀 차장도 "세계 IB에 대한 투자문의와 실제 주문이 이전보다 2~3배 정도 늘었다"며 "최근에는 일반법인들도 IB 주가 전망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설명)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이들은 50억~100억원 정도의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굿모닝신한 리딩투자 한국투자증권 등은 미국 주식 직접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IB 주식에 대한 투자움직임은 '위기는 곧 기회'라는 인식이 점차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고강도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데다 한국투자공사를 비롯한 국부펀드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는 것이 자극이 됐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 금융주가 큰 폭으로 올랐다는 경험도 배경에 깔려 있다.

이경식 펀드매니저는 "현재 주요 IB 주식은 최근 10년 내 최저 수준의 PBR(주가순자산비율)에서 거래되고 있다"며 "3~6개월에 걸쳐 분할해 매입하거나 펀드를 통해 간접투자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한국운용 삼성투신 하나UBS자산운용 등은 아직 펀드 설정액은 미미하지만 이미 간접투자를 위한 펀드를 내놓고 있다.다만 현주미 센터장은 "서브프라임 부실 문제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닌 만큼 어느 정도 위험이 있다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투자는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