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헤지펀드 옵션시장 휘젓는다

싱가포르 호주 미국 등 외국계 매머드급 헤지펀드들이 엄청난 자금력과 선진 금융기법을 앞세워 옵션시장을 휘젓고 있다.

이들 헤지펀드의 비중이 커지면서 개인투자자는 물론 증권사들도 설 자리를 잃고 옵션시장에 등을 돌리는 추세여서 이대로 가다간 '외국인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외국계 펀드들은 코스피200옵션 거래량이 5년 만의 최대치(3085만계약)를 기록한 13일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외국인은 풋옵션을 2만계약 이상 순매수하다 장 마감 무렵에 1만계약 순매도로 돌변하면서 시장흐름을 좌지우지했다.

전문가들은 당초 주문을 낼 때 내야 했던 증거금을 계약 후 체결분에 대해서만 내도록 한 사후증거금제도가 2005년 도입된 이후 외국인의 영향력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증권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선물·옵션시장에서는 싱가포르계 헤지펀드인 토지(TOJI)를 비롯해 아르셀론 팀벌리 알스톤 등 30여개의 해외 대형 헤지펀드와 운용사 계좌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일평균 주문 건수는 수만건에 이른다.

삼성증권을 통해 거래하는 한 헤지펀드는 하루 최대 50만건에 육박하는 주문을 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외국계 헤지펀드의 주문량이 워낙 많은 만큼 수작업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주로 시스템에 의해 매매가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특히 알고리즘(컴퓨터가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한 단계적인 방법) 매매를 통해 시장을 주무르는 '마켓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들에 밀려 국내 투자자 비중이 갈수록 격감하고 있다는 점이다.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200옵션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은 2000년 12월 4.98%에 불과했으나 2005년 말 15.68%까지 증가한 후 올 1월에는 27.50%까지 높아졌다.

이달 들어서도 24%대의 높은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개인투자자와 증권사 비중은 2005년 말 각각 40.03%,41.47%였던 것이 이달에는 37.68%,32.95%로 떨어졌다.

선물시장에서도 외국인은 2000년 말 5.43%에서 지난해 말 24.65%로 비중이 높아지면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계 큰손들이 시장을 자신들이 짜놓은 방향으로 몰고 가기 위해 실제 매매할 의사 없이 허수주문을 내는 일도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매도 또는 매수 허수주문을 내 증권사와 일반투자자 등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어 시장의 변동성을 키운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11일 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코스피200 선물·옵션시장에서 고객의 허수주문을 반복적으로 받아 처리한 도이치증권에 대해 '경고' 조치하기도 했다.

또 업계에서는 거래소가 선물·옵션시장 세계 1위라는 포장을 위해 2005년 9월 서둘러 '사후위탁증거금제도'를 도입한 것이 외국인이 활개칠 수 있게 날개를 달아준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제도는 주문을 낼 때는 별도의 증거금이 필요없고 체결된 부분에 대해서만 증거금을 내게 한 것이다.

외국인과 국내 적격기관투자가는 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해외 헤지펀드들은 수십만건의 주문을 내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얘기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나 대만 인도 등은 아직 사전증거금제도를 유지하고 있다.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시스템과 자금력에서 뒤지는 국내 투자자들은 시장을 외국계에 다 내줘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