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언땅에 뿌리는 씨앗

최현만 <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hmchoi@miraeasset.com >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이 있다. 씨 과실은 다 먹지 않는다는 뜻이란다. 지금 굶주린다고 씨앗까지 먹어버리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장기투자는 바로 이 '석과불식'이라는 신념체계에 기반한 투자 원칙이 아닐까 싶다. 즉 인류 진보의 장기 성과를 믿고 어려울 때 일수록 오히려 기회를 찾는 자세를 말한다. 투자는 이미 만개한 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 언 땅에 나무가 될 씨앗을 심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장기투자의 높은 성과와 진리성은 역사가 증명해 왔다.

이러한 지혜는 가을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전환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잘 설명해 주기에 최근처럼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전환기에는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실제 많은 투자가들이 미국 경제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이 또한 계절의 변화에 불과하다. 미국은 지고 이머징마켓은 떠오르고 있다. 이 계절의 변화가 겉으로 보기엔 혼란스러워도 씨앗은 떨어져 새로운 토양에서 자란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이머징마켓의 전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미국의 GDP를 넘어서는 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최근 우리회사 애널리스트들로부터 중국 및 인도 기업 탐방 결과를 자주 듣는다. 놀라운 점은 중국 제조업체들의 생산성이 생각보다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축적해 온 각종 첨단 기술을 적용한 설비를 사용하기 때문이란다. 더 나아가 브랜드 개발 등에 대한 노력도 돋보인다.최근 통계를 보더라도 중국의 고성장이 단순히 요소 투입만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요소 투입 효과는 60% 정도에 그치고 나머지 40%는 생산성 향상효과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계절이 바뀔 때는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이 또한 세심히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미국의 흔들림보다는 앞으로 뻗어 갈 이머징 마켓에 주목하고 싶다. 계절이 바뀔 때는 추세보다는 현상만을 보기 쉽다. 그러나 떨어지는 낙엽을 보지 말고 '석과'를 품고 있는 계절의 변화를 읽는 안목이 필요하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땅이 품고 있는 씨 과일,아니 이미 꿈틀거리고 머리를 내밀고 있을지도 모를 희망의 새싹을 찾는 것이야 말로 투자의 요체며 인생에 임하는 자세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