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디즈니가 먼저 본 것

"안타깝습니다.

월트 디즈니씨가 이 자리에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1971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디즈니월드 개장식.사회자는 이미 수년 전 고인이 된 월트 디즈니 대신 참석한 디즈니 여사를 소개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디즈니 여사는 웃으며 이렇게 인삿말을 시작했다.

"무슨 말씀을! 월트가 디즈니월드를 가장 먼저 본 사람인 걸요!"비전의 힘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예화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꿈을 가진 사람들의 원대한 비전이다.

그런 비전이 없으면 일은 시작도 되지 않는다.비전은 경영이론가들이 KO(Knock Out) 요소라고 부른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도 이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얘기다.

나라라고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오히려 각종 자원이 산재해 있고 이해당사자 집단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미래를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 움직일 수 있는 비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 이 시점 우리나라의 비전은 무엇인가? 10년 뒤 20년 뒤쯤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가 돼있을 것인가.

'경제 살리기'가 핵심 아젠다인 건 분명하지만 이것 역시 비전 아래에 있어야 하는 액션플랜일 뿐이다.

비전이 없어도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문제가 이곳저곳에서 생겨나게 돼있다.

우선 중간 단계의 실행계획을 세울 수 없다.

눈에 띄는 문제를 땜질하는 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공직사회만 봐도 그렇다.

경제 살리기가 중요하다니 관공서마다 불필요한 전등 끄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돈이 든다고 파워포인트도 만들지 말라는 지시까지 있다고 한다.

비전도 없고 있다고 해도 알리지 않으니 나라 전체가 방향성 없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많은 이들이 느끼는 불안감의 밑바탕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원인이야 많다.

정치 일정이 큰 문제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사실상 총선 정국이었다.

이 와중에 표를 깎아먹을 수도 있는 큰 얘기를 피하는 경향도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큰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공론화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모두가 각자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특히 공직사회의 요동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는 시급하다.

공직사회와 관련해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글로벌 비전이다.

이제 우리 대기업들은 한국만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이미 해외에 나간 기업이 6000여개가 넘고,해외동포도 700만명 가까이나 된다.

예를 들어 중국 노동법이 바뀌면 중국 현지에 나가있는 작은 업체들이 알아서 연구해야 할까? 유럽의 공정거래법이 바뀌면 누가 알아서 해야 하나? 현지의 세법은? 노동부건 국세청이건 공정거래위원회이건 우리 공직사회가 이런 일을 해가며 세계를 상대로 눈을 더 크게 뜰 때 글로벌 국가로 가는 길이 열린다.

이 방향도 글로벌,경쟁력,선진국 등을 키워드로 한 나라 비전이 있을 때라야 잡히는 것이다.

최소한 이 정부가 끝날 때쯤 어떤 나라가 될지를 그려보고 싶다.

이왕이면 가슴 뛰는 비전이었으면 한다.먼저 본 사람이 그 얘기를 해주면 좋겠다.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