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누가 이기고 누가 졌단 말인가

김정산 <소설가/대하소설 '삼한지' 작>

그동안 남북 관계를 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였다.긍정과 부정.양쪽 주장을 들어보면 나름대로 모두 일리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월드컵 축구 3차 예선전을 치르며 북한이 보여준 행태는 남한의 국가원수가 두 사람씩이나 평양을 다녀오면서 쌓아온 그간의 우호관계를 저토록 손쉽게 무너뜨릴 수가 있는지 기가 차고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양측 정상이 연출한 드라마의 감동이 아직도 뇌리에 또렷한데,북한은 평양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걸고 애국가를 연주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월드컵 예선전의 자국 개최를 거부했다.결국 경기는 FIFA 중재로 제3의 장소에서 열렸다.

지난 10년간 쌓아온 남북간의 우호와 신뢰란 게 겨우 이런 수준이란 말인가.

양측 국기 걸어놓고 축구 경기 한판 할 수 없다는 것인가.그렇다면 확실히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일 수 있다.

정부는 국민을 대표하고 민의를 대변한다.

십 수만원을 내고 북한에 건너가 점심 한끼 먹고 돌아오는 관광도 궁극적으로 북한을 돕겠다는 마음이 깔리지 않으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북측 당국자들이 체제가 달라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남한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아니라 민심과 여론이다.

차제에 충고하거니와 그대들을 적(敵)이라 여기고는 불가능했을 일도 동포애 차원에서 수긍했던 남한의 민심이 이런 사소하고도 감정적인 일을 겪으며 무섭게 돌아선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런데 보수의 기치를 내건 새 정부가 전통 우방인 미국과 관계회복 및 협력강화를 선언하고 나서자 미국에서는 그간의 불만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양 주한미군 주둔지 이전 비용을 한국정부에 떠넘긴다.

짐작컨대 동맹강화를 명분으로 조만간 신무기도 더 많이 팔려고 나설 것은 필지의 일인 듯하다.

일본이라고 가만있을 리 없다.

한국이 정권교체와 선거 때문에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외무성 홈페이지에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슬그머니 올려놓는다.

자고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집요한 생떼에는 무반응이 상책이지만 대책을 세우려면 백년,천년을 두고 세우는 게 옳다.

자,이쯤에서 한번 주변을 돌아보자.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나 외에는 모두가 남이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믿을 자가 없다.

내 주머니가 두둑할 때는 사방에 웃음꽃이 만발하지만 내가 없어보면 당장에 세상은 지옥이 되고 나는 철저히 고립된다.

이런 삭막한 인생살이의 이치가 국가간의 일이라고 다를 까닭이 있으랴.동포라는 북한도,우방인 미국과 일본도 기실은 모두가 남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우리와 협력할 국가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니 여당 야당 따지지 말고,보수니 진보니 이런 허깨비놀이도 이제 그만하고,근시적인 당리당략에도 휘둘리지 말고,제발 똘똘 뭉쳐서 대한민국을 위해 큰일 한번 힘차게 해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국제 여건이 어려워도 여야가 합치고 국민이 뭉치면 못할 일이 없다.

그게 본래 우리 대한민국의 저력이고 우리 국민의 근성이다.

장장 18대를 내려오는 동안 민심을 제대로 반영한 국회가 몇 번이나 있었던가.

그 길고 오랜 실망의 반복이 이번 총선에서 드디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6% 투표율을 만들어냈다.

이미 절대다수 국민이 포기한 정치요,정치권이란 얘기다.누가 이기고 누가 졌단 말인가? 18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부디 이 점을 명심하고,세계 정치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그야말로 감동적이고 환상적인 여야 화합과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것이 이번 총선에 나타난 민심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