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도심 사찰서 수해하니 포교도 저절로 잘돼요"

"흔히 도를 닦는다 수행을 한다고 하면 산중 선방에서 정진하는 것만 생각하기 쉽지요.

저도 그렇게 살았고요.하지만 도회지 사찰의 주지를 맡아서 기도·정진에만 애쓰다 보니 내 공부가 될 뿐만 아니라 신도들도 참 좋아합니다."

서울 삼성동의 천년 고찰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58)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처음엔 어떻게 1000일을 견딜까 싶기도 했지만 이젠 남은 500일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06년 12월 "앞으로 3년 동안 절 밖으로 나가지 않고 기도·정진만 하겠다"며 1000일 기도를 시작해 오는 17일이면 500일째를 맞는다.그동안 명진 스님은 새벽 4시30분,오전 10시,오후 6시 등 하루 세 차례에 걸쳐 모두 1000배를 하는 절 수행과 기도를 해 왔다.

"그동안 도심 사찰들이 너무 포교당 역할만 해 왔는데 이제는 도심 수행처로 바뀌어야 합니다.

불교는 믿음을 통한 각성의 종교인데 포교만 너무 강조하다 보니 수행과 깨달음이라는 불교 고유의 색채가 퇴색했어요.이제는 수행으로 불교 본래의 면모를 되찾고 포교 방식도 바꿔야 합니다."

명진 스님이 외부 출입을 삼간 채 기도·정진하는 동안 봉은사는 여러 가지 변화를 겪었다.

일요법회 참석자가 크게 늘었고 전체 신도도 3000여명이나 증가했다.박원순 변호사 등 각계 전문가들로 봉은사미래위원회를 구성해 사찰의 사회적 역할 확대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또 지난해 말 재정 공개를 선언하고 올해 들어선 신도들이 불전함 열쇠를 갖고 직접 시주금 관리에 참여하고 있다.

고민도 없지 않다.

봉은사 땅이 2만평 가깝지만 실제로 쓸 수 있는 공간은 너무 부족하다는 것.대웅전은 150명,법왕루는 400명이면 꽉 찬다.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사찰 입구 공터에 지하 공간과 지상 공원을 조성하는 방안도 '근린 공원'이라는 규제에 묶여 답보 상태다.

명진 스님은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사찰이라 잘 가꿔 놓으면 몇 배의 효과를 거둘 텐데 진전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명진 스님은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경제,경제 하다 보니 도덕과 윤리가 거의 무너지고 없어진 느낌"이라며 "돈을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땅 투기나 거짓말을 해도 큰 타격을 받지 않으니 '위험 사회'가 아니라 희망이 없는 '절망 사회' 같다"고 했다.인간의 가치를 바로 세울 길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