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떤 결혼식

이혜숙 < ks+partners 이사 hslee@ks-ps.co.kr >

벚꽃 구경 차량으로 고속도로가 막히던 지난 주말,회사 후배 결혼식에 갔다.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회사를 다니는 후배가 신랑 고향에서 식을 올리기로 했다는 말이 나왔을 때 조금 의외였다.

결혼식이 열리는 지방의 교회를 향해 가는 차 안에서 기혼자나 미혼자 모두 결혼식 행태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결혼식을 인스턴트처럼 후다닥 치러야 하나,길어야 30분 걸리는 결혼식을 위해 돈을 그렇게 많이 써야 하나,꼭 필요한 사람들만 불러 파티처럼 할 수는 없나….다양한 얘기의 결론은 결혼식에 '아이디어'가 없다는 것이었다.얘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내 결혼식 해프닝이 생각났다.

시댁이 기독교 집안이어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은 예식장에서 하고 대신 주례는 목사님이 맡기로 했다.

문제는 결혼식날 날씨였다.진눈깨비가 흩날리면서 도로가 아수라장이 됐다.

신랑 측 하객들을 태운 버스는 찬송가를 불러야 하는 순서가 될 때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찬송가는 1절만 간신히 부르고 중단됐다.제대로 부를 줄 아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장 분위기가 썰렁해진 순간 '왜 내 결혼식을 내 맘대로 못하는 건가'란 생각이 들며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세 시간 반 만에 결혼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제까지 사무실에서 정신 없이 일하던 후배는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있었고,교회의 엄숙함이 좋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결혼식은 물 흐르듯 진행됐는데,축가 순서에서 갑자기 신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일어섰다.

그리고 어떤 부부와 손을 잡고 축가를 부르는 게 아닌가.

신부의 당황한 눈빛을 보니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어른 네 분이 손을 잡고 미소를 띤 채 축가를 부르는데,신부는 눈물이 흘러 어쩔 줄 몰라했다.

결혼식 축가가 그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기에,지켜보던 나도 눈물이 흘렀다.

신부 몰래 준비한 부모님의 감동적인 '결혼 선물'이었다.

신부의 부모님과 같이 노래를 부른 부부는 신부가 평소 이상적으로 생각해 온 부부라고 한다.

식이 끝난 후 신부 아버님은 눈물을 안 보이려 특별히 준비한 거라며 애써 웃으셨다.

아이디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예상하지 못했던 그 무엇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많은 결혼식에 가 봤지만 이렇게 감동적인 결혼식은 처음이었다.

지금도 축가를 부르시던 부모님의 그 모습이 내 마음에 선명한 사진처럼 남아 있다.지독한 음치인 나는 훗날 두 딸의 결혼식 때 어떤 '아이디어'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행복한 숙제가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