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상속은 받았지만 정확한 빚 모를땐 '한정승인' 선택을

김선호 < CFP인증자ㆍ한국FP협회 전문위원 >

상속설계라고 하면 흔히 돈 있는 사람의 전유물로 생각한다.부자에게도 필요하지만 빈자에게 더 절실한 것이 상속설계다.

돈 없는 사람은 상속설계를 통해 최소한 자식들에게 빚 없이 출발할 수 있는 튼튼한 재무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부를 물려주지 못할망정 최소한 빚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상속인인 자녀에게 상속설계의 기본 개념 중 하나인 한정승인과 상속포기 제도를 반드시 알려주어야 한다.한정승인은 상속으로 승계받은 자산(적극재산)의 범위 내에서 부채(소극재산)를 청산하고 적극재산을 넘는 소극재산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상속 방법이다.

즉 피상속인인 부모님이 1억원의 금융자산과 3억원의 부채를 남긴 채 사망한 경우 자녀인 상속인이 한정승인을 신청하면 1억원의 금융자산 한도 내에서만 부모님의 부채를 책임지게 된다.

한정승인을 하지 않고 단순승인하거나,상속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처분하거나,상속재산을 은닉 또는 부정소비하면 1억원의 금융자산을 물려받는 기쁨보다 3억원의 부채를 갚아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한정승인은 상속받는 자산이 부채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숨겨져 있거나 알지 못하는 부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될 때 사용하는 대비책이라면,상속포기는 자산보다 부채가 명백하게 많거나 받고 싶지 않은 상속자산이 있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상속을 포기하면 상속되는 자산과 부채가 얼마이든 상관없이 상속인인 자식에게 아무것도 이전되지 않는다.

자산도,부채도 승계되지 않는다.한정승인과 상속포기는 상속개시를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일정한 방식으로 가정법원에 각각 신고를 해야만 유효하다.

법원에 신고하지 않은 채 3개월이 경과하면 단순승인이 되어 상속받은 자산보다 부채가 많을 경우 초과된 부채도 책임져야 하는 불상사가 빚어지게 된다.

다만 상속인이 중대한 과실 없이 상속채무의 초과사실을 알지 못하고 단순승인을 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

돈이 없거나 자산보다 부채가 많기 때문에 상속설계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오히려 상속인인 자녀에게 자신의 물질적 실수가 대물림되지 않도록 한정승인과 상속포기 제도를 적극적으로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제도를 통해 상속자산을 초과하는 상속채무를 대물림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피상속인인 부모와 상속인인 자식이 연대보증을 한 채무는 피상속인의 상속채무에 포함되어 없어지지 않고 연대보증을 한 자식의 채무로 남는다.

따라서 세대 간 보증은 절대 안 하는 것을 가풍(?)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돈 없는 사람은 빚을 물려주지 않는 소극적 상속설계뿐만 아니라 유산보다 더 중요한 유지를 남기는 정신적 상속설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부모가 세상을 살면서 품었던 생각(遺旨)과 살아서 이루지 못하고 남긴 뜻(遺志)을 자녀에게 물려줌으로써 자식 세대는 돈과 삶이 좀 더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 수 있는 생생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 다닐 때 투자론 강의를 하던 윤계섭 교수가 들려준 얘기가 생각난다.

윤 교수의 선친은 돌아가시기 전 교수님을 앉혀놓고 "내가 너에게 빚을 물려주지 않았으니 거액의 재산을 상속한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상속의 핵심을 짚은 얘기여서 지금도 머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 윤 교수가 지난해 12월19일 창립된 '한국FP학회' 학회장으로서 재무설계의 이론화와 보급에 힘쓰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인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