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네탓만 있는 '비례대표'

총선이 끝난 지 10여일이 지났지만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자격 시비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검찰은 20일 친박연대의 공천헌금 의혹과 관련해 양정례ㆍ서청원 비례대표 당선자에 이어 공천심사위원이었던 김노식 당선자에게도 소환을 통보했다.김 당선자는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다며 출석하지 않았다.

4차례 전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창조한국당의 이한정 당선자와 주가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통합민주당 정국교 당선자도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현재 연락 두절상태다.핸드폰을 꺼놓고 집에도 없다.

이들의 측근은 검찰이나 당에서 모든 걸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에선 뒤늦게 이번 비례대표 파문에 대해 청문회ㆍ경선 등 검증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맞는 말이다.

문제는 왜 문제가 불거지기 전엔 침묵을 지키다 이제 와서 나서냐는 것이다.

그것도 마치 공천과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정치권이 '공천과정의 투명성 확보와 후보 검증시스템 강화'를 말하지 않았던 선거는 없었다.기자의 기억으로는 선거철이면 정치권이 이 문제로 늘 시끄러웠다.

그런데도 '검증'은 엉망이었다.

예컨대 양정례 당선자의 학력ㆍ경력 의혹을 함승희 공천심사위원장이 몰랐고,주가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정국교 당선자는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민 사람이라고 한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문제가 된 이한정 후보의 공천을 누가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쯤 되면 눈 감고 귀 막고 찍어준 공천이나 매한가지다.

논란이 불거진 각 당의 관계자는 "시한에 쫓기다보니 급하게 (공천)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건 변명에 불과하다.

국민 누구도 정치권에 허겁지겁 공천하라고 하지 않았다.

국민의 주문은 분명하다.

도덕성과 자질을 갖춘 최소한의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공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문제 있는 인사들을 비례대표에 다수 포함시켰다.

'비례(非禮)대표'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말 그대로 국민을 무시한 것이다.그러고는 뒤늦게 제도 탓을 하는 우리 정치권이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준혁 정치부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