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금융시장의 재구성 문제

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우리금융 산업은행 등 국가가 소유한 금융기관의 장들이 모두 일괄 사표를 냈다.르네상스형 인간인 박병원 회장도,배포 좋은 박해춘 행장도,투자금융 공부에 열심이었던 김창록 총재도 모두 사표를 냈다.

월급 몇 번 받아보지 못한 기업은행,수출입 은행장도 얼떨결에 사표를 냈다.

지금쯤 열심히 뛰고 있을 것이다.구두창이 닳는 정도에 따라 소수는 생존하고 다수는 자리를 떠날 것이다.

사실 좌파 정부 10년 동안 가장 제멋대로 돌아간 곳이 금융 시장이요 금융가 인맥이다.

증권사기를 친 끝에 1심에서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김경준류(流)가 좌판을 독차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김대중 대통령이 당선 직후에 만난 것이 국제 투기가 조지 소로스였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소로스와 외환위기는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 출발이었으니 외국계 금융기관 출신이면 그 사람이 법정관리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인지도 따지지 않고 은행장에 기용했다.일부에서는 "텔러라도 좋다.

외국계 출신이면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외국계 출신이기만 하면 다죽어가는 엽전 은행을 화려한 국제 IB로 키울 것같고, 미국 월가의 물을 조금이라도 먹었다 싶으면 선진 기법을 들여와 한국 금융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 같은 환상과 착각이 지배했다.

이헌재 전부총리의 입김이 얼마나 셌는지,또 그가 실제로 금융가를 소위 이헌재 사단으로 다 채우려고 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동북아금융허브라는 우아한 레토릭 아래 한국 금융은 세계에서 가장 개방은 되었으되 수준은 여전히 가장 낮은 그런 곳이 되고 말았다.

지금 잘나가는 은행장이라고 해도 모두 소매금융 전문일 뿐이어서 국제업무도 프로젝트파이낸스도 도매금융도 해본 적이 없었다.

출세는 그렇게 많은 경우 운(運)이 좌우하게 되는 모양이다.

최근에는 허다한 김경준 아류들이 이명박 정부 고위직에까지 도전하기도 했다.

놀라운 일이지만 금융허브라는 일종의 오조준된 개그가 아직 살아있는 덕분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10년간 은행 소유권도 외국인들이 독식하고 말았다.

반외자 국수주의 정서라고? 턱도 없다.

오히려 바로 그런 허수아비 놀음 때문에 해외로 뻗어가는 금융허브전략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외국인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자산시장을 보고 들어오는 것일 뿐 허브전략을 취할 까닭이 없다.

제일은행이건 외환은행이건 씨티은행이건 이들이 아쉬워하는 것은 해외가 아닌 국내 점포망이다.

10년이 지났건만 선진금융 기법을 이식해왔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세계의 골칫거리인 파생상품 분야를 제외하면 기실 선진 금융기법이란 것 자체가 없다)

예를 들어 한때 가장 국제화되었던 외환은행은 지금은 조그만 로컬은행으로 전락해 있다.

론스타가 HSBC에 경영권을 넘기고 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미 세계적 점포망을 갖고있는 HSBC가 외환은행을 허브로 키울 까닭도 필요도 없다.

HSBC는 한국내 점포망이 필요한 것일 뿐이다.

이것이 거꾸로 뛰어왔던 10년의 결과다.

이 오류들에 대해 반성이 없다.

최근의 환율 논쟁도 그런 해프닝의 하나다.

환율 주권까지 부정하는 엉터리 시장주의를 좌시할 수는 없다.

잘못된 사고가 이미 보통사람의 골수에까지 들어찬 정도다.

월가 사람처럼 까만 양복에 노란 넥타이만 매면 금융기관장 자리도 꿰찰 수 있다면 그것은 패션쇼에 불과하다.

정치권의 친북 좌파보다 더 엉터리가 금융 인맥이었다는 주장도 있다.강만수 장관과 전광우 위원장은 당장은 빈 자리부터 채워가야 하겠지만 이를 한국 금융의 혼(魂)과 정신을 되살려내는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