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쇄신안 발표] 오너 없는 체제, 과감한 투자·신속한 결정 가능할까


"지금 당장 책상 위에 쌓인 경영현안이 산더미 같은데…."(삼성전자 A부사장)

4.22 경영 쇄신을 계기로 삼성그룹은 앞으로 계열사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된다.이전까지 이건희 회장과 전략기획실이 주도했던 신규 투자와 해외 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을 앞으로는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맡을 전망이다.

이학수 삼성전략기획실 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더라도 경영 혼선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20년 넘게 지속된 '이건희 회장-전략기획실-전문경영인' 체제의 공백을 쉽사리 메우기는 힘들 것이란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그룹이 앞으로 직면할 다섯 가지 핵심 현안이 전문경영인 체제의 안착 여부를 가늠할 시험 무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규 투자 결정은 어떻게

삼성그룹이 매년 삼성전자 공장 신설 등에 투자하는 돈은 20여조원에 달한다.

투자 결정 권한은 지금까지는 이 회장과 그룹 전략기획실에 있었다.2004년 성사된 삼성전자와 소니의 8세대 LCD라인 합작 건도 이 회장과 전략기획실이 주도해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앞으로 대규모 신규 투자와 관련된 핵심 의사 결정 권한은 각사 전문경영인들이 맡게 된다.

당장 삼성전자의 경우 올 상반기 중에 일본 소니와 8-2 LCD 패널 공장 합작 투자건을 확정지어야 한다.또 베트남 휴대폰 공장 등 동남아시아 현지 생산기지도 확충해야 한다.

전문경영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삼성의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중복 투자 교통정리도 문제

계열사 간 중복 투자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도 문제다.

삼성은 그동안 이 회장의 '메기론'에 따라 비슷한 업종에 속하는 계열사들을 경쟁시켜왔다.

'메기론'이란 연못에 메기를 풀어놔야 미꾸라지들이 활발히 움직이는 것처럼 계열사들끼리도 경쟁해야 살아남는다는 경영방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와 삼성SDI가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사업.양사는 4∼5년 전부터 OLED 개발 및 상용화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내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계열사들의 중복 투자로 인한 위험성이 클 경우 이 회장과 전략기획실에서 개입해 교통정리를 해 왔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중복 투자를 조율하지 못한다면 각사 간 과열 경쟁으로 이어져 삼성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유지는 어떻게

해외 주요 협력사들과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도 전문경영인 체제가 고민해야 할 현안이다.

그동안 삼성그룹이 해외 협력사들과 맺은 네트워크는 대부분 이 회장이 주도해 왔다.

1970년대 미국 코닝사와 브라운관 유리사업을 할 때 역시 이 회장이 코닝 경영진과의 담판을 통해 결정했다.

소니와의 LCD패널 협력사업도 이 회장의 측면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날 쇄신안을 통해 이 회장이 퇴진하고 삼성전자 최고고객책임자(CCO)를 맡고 있던 이재용 전무까지 자리를 비움으로써 삼성의 대외 거래선들과의 협력 네트워크에 구멍이 생길 가능성이 많아졌다.


◆M&A 등 신성장동력 확보는 어떻게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삼성이 작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성장전략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도 관심이다.

삼성은 지난해 그룹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M&A도 적극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그동안 계열사별로 추진했던 신수종사업 발굴도 그룹 차원에서 추진한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 임형규 삼성종합기술원장을 팀장으로 하는 '신수종사업 태스크포스(TF)'를 꾸릴 것을 지시했었다.

이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당분간 M&A 및 신수종사업 발굴도 지연되지 않겠느냐는 게 그룹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밖에 그동안 이 회장과 전략기획실이 사실상 결정했던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어떻게 실시할 것인가도 현안이다.그룹 관계자는 "앞으로는 최종적인 인사 결정권자가 없기 때문에 각사 인사팀에서 충분한 평가를 거쳐 인사를 하게 될 것"이라며 "CEO도 각사 인사팀에서 차기 CEO 후보군을 선정한 뒤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쳐 교체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