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분석] 종착점 보이는 지구촌 금융위기 … 2500억弗 부실 청소


"이것은 아직 끝이 아니다.

끝의 시작도 아니다.단지 시작의 끝일 뿐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이집트 서쪽의 엘 알라메인에서 날아온 영국군의 첫 승전보를 접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평가다.

버나드 몽고메리가 이끌던 영국군이 독일 에르빈 로멜의 전차군단을 격파한 엘 알라메인 전투는 2차 대전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됐다.당시 처칠의 말처럼 '끝의 시작인가,시작의 끝인가'하는 논란이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위기가 끝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신용위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주류지만 일각에선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씨티그룹의 비크람 팬디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2일 주주총회에서 "신용위기가 초반보다 종반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서 모건스탠리의 존 맥 CEO도 "미국 서브프라임 시장 위기는 8회나 혹은 9회말 정도에 왔다"고 말했다.

반면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PIMCO)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공동 CEO는 "세계 경제가 새로운 국면의 혼란을 보게 될 것"이라며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끝났다는 일각의 주장은 너무 성급하다"고 주장했다.1987년 블랙먼데이를 예고해 '닥터 둠(Dr.Doom)'이란 별명을 얻은 마크 파버도 "신용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회사 2500억달러 부실 털어내

지난해 하반기 서브프라임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2500억달러(약 250조원)에 달하는 부실을 상각 처리했다.

가장 큰 희생양이 된 미국 씨티그룹의 경우 지난해부터 올 1분기까지 서브프라임 관련 상각액이 407억달러에 이른다.

지난 1분기에 순손실 51억달러로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씨티그룹은 지금까지 1만5200명을 감원하고,제너럴일렉트릭(GE)에 리스사업부인 씨티캐피털을 134억달러에 매각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유럽 최대 은행인 스위스 UBS는 380억달러에 달하는 서브프라임 손실에 대한 책임으로 마르셀 오스펠 전 회장이 물러나고 페터 쿠러 신임 회장이 선임됐다.

UBS는 지난 23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IB 부문을 축소하고 해당 분야 직원 2500명을 정리해고하기로 했다.

또 신주 발행을 통해 150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키로 결정해 유동성에 숨통을 틔웠다.

서브프라임 손실 규모 3위(320억달러)와 3분기 연속 적자라는 불명예를 한꺼번에 안은 메릴린치도 우선주 매각과 채권 발행 등으로 95억5000만달러를 조달하고 직원 5200여명을 감원하는 등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2위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149억달러의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을 충당하기 위해 보유 중인 중국건설은행 지분 9%를 팔고,프랑스 BNP파리바에 헤지펀드 업무를 담당하는 프라임 브로커리지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이후 씨티 메릴린치 UBS 등 미국과 유럽의 22개 주요 금융회사가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을 메우기 위해 외부로부터 수혈받은 증자(자본금 확충)액은 1200억달러에 달한다.

서브프라임 관련 상각액(2500억달러)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각 금융회사의 손실 고백과 신규 자본조달은 시장이 불안 심리에서 벗어날 계기를 만든 셈이다.

◆위기 종료의 신호탄?

엘 알라메인 전투가 2차 대전의 중요한 분수령이었다면 이번 신용위기의 전환점은 지난 3월17일 '베어스턴스 사태'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300억달러의 긴급자금을 투입해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의 부도 위기를 막고 JP모건체이스로의 매각을 중재했다.

또 투자은행에도 재할인시장의 문호를 열며 직접 대출을 시작했다.

금융시장은 "더 이상 부도는 없다"며 안도했고 투자자들의 공황 증세는 진정 조짐을 보였다.

뮤추얼펀드인 '레그메이슨'의 빌 밀러 펀드 매니저는 "FRB의 베어스턴스 구제가 금융시장 패닉 사태의 끝을 알리는 사건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CEO들을 중심으로 신용위기가 바닥을 쳤다는 장밋빛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CEO는 지난 10일 주총에서 "현재의 위치는 신용위기의 출발점보다 종료점에 가깝다"며 "신용위기의 4분의 3 지점이나 막바지인 4분의 4 지점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제임스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도 최근 주주들과의 컨퍼런스콜에서 "신용위기는 75~80%가량 끝났다"고 분석했다.

모기지 관련 증권을 헐값에 사들이는 벌처펀드(구조조정 펀드)나 사모펀드가 늘고 있는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힌다.

총 1600억달러를 운용하는 웨스트 트러스트사는 지난 3월 초에 모기지 관련 증권을 1달러당 65센트를 주고 샀다.

또 마라톤애셋매니지먼트는 모기지 관련 증권을 최근 10억달러어치 이상 사들였다.

메트로폴리탄 웨스트 자산운용사도 최근 모기지 관련 증권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월가에서는 돈 냄새를 맡는 데 본능적인 벌처펀드가 움직인다는 것은 시장이 최악의 상황을 지났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이젠 경기가 관건

하지만 '끝의 시작'이 아닌 '시작의 끝'이란 진단도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에 따른 금융시장 잠재 손실이 아직 전부 드러나지 않은 데다 실물경제 침체 조짐이 심화되고 유가 및 곡물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도 엄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브프라임 사태의 근원인 미국의 주택 경기가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 상황의 종료를 선언하기엔 이르다는 주장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와 신용경색으로 금융시장 잠재 손실 규모가 9450억달러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지금껏 금융사의 서브프라임 손실 관련 상각 처리 규모는 2500억달러로 IMF가 추정한 잠재 손실의 4분의 1에 그친다.

미국의 소비와 고용 지표는 여전히 좋지 않다.

미시간대가 최근 내놓은 미국의 소비심리는 2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미국의 비농업 부문 취업자 수는 지난달 5만명이나 감소하며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미국의 주택 가격 하락 기조도 여전하다.

주택시장의 침체는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를 짓누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출자의 채무불이행 증가를 불러와 은행권 손실 확대와 신용경색 재발로 이어질 수 있다.메릴린치의 리치 번스타인 수석투자전략가는 "신용위기만 보면 최악의 상황은 지났지만 경기침체는 아직 바닥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안전띠를 풀기엔 이르다"고 지적했다.

유병연/이미아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