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기(中企) 금융서비스 질(質) 높이려면

윤석헌 < 한림대 교수·재무금융학 >

중소기업이 어렵다.천정부지로 치솟는 유가와 원자재 값,아직도 높은 은행 문턱 등으로 중소기업들의 형편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급박한 환경변화 속에서 정부는 국책은행 민영화 추진과 맞물려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근간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간 국책은행 등을 통해 직접 지원하던 방식에서,국책은행 매각자금으로 한국투자펀드(KIF)를 설립하고,이를 통해 민간은행들에 정책자금을 배부하되 민간자본을 곁들여 지원하도록 하는 소위 전대(on-lending)방식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전대방식은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보와 유인의 양면에서 정부의 정책목적과 민간은행의 금융지원 집행 간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고 또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질 경우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로 비효율 발생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출 리스크를 KIF와 민간은행이 분담하게 해 중개 유인을 활성화시킨다지만,정보비대칭성으로 은행은 스스로가 대출 위험을 모두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리스크가 큰 중소기업 대출을 꺼리게 될 것이다.특히 금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신BIS협약이 문제를 악화시킬 소지도 있다.

결국 전대자금은 담보가 있거나 신용등급이 우량해 이미 민간은행의 주요 고객이 된 우량 중소기업들에 몰릴 것이다.

실제로 중소기업 지원에 전대방식을 주로 사용하는 독일 부흥은행(KfW)의 경우,전대방식의 대출은 담보대출 위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반면 성장가능성은 높지만 담보가 부족한 창업기업과 기술력 평가가 어려운 혁신형 중소기업 등은 자금난이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전대방식의 지원이 기존 정책금융기능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특히 창업기업과 혁신형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서비스 제공은 한국경제의 지속 성장에 필요한 신성장동력 확충과 한국사회 현안과제인 양극화,고령화,균형발전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아직은 민간은행들로부터 금융서비스를 받기 어렵고 자본시장 접근도 제한돼 있는 중소기업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 차세대 성장동력의 예비후보라 할 수 있는 이들에게 효과적이고 선진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국책은행 민영화의 핵심과제가 아닐 수 없다.

중소기업 지원에서 유동성 공급만이 능사는 아니다.

대출과 보증,출자,증권화 및 구조화,그리고 심지어는 경영과 금융에 대한 컨설팅과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컨대,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이라도 신용보증기관의 신용보증을 얻게 되면 민간은행으로부터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신용보증은 큰 자금을 필요로 하지 않아 효율성이 높고 게다가 현행 신용보증제도는 네트워크를 구비해 접근성도 좋다.

수출보험공사나 중진공으로 하여금 기업들과 민간은행들 사이에서 환위험 집중 중개센터로 기능케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구슬을 꿰어 염주를 만드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인데,이러한 역할은 정책금융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조직이 맡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KIF의 구성과 역할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예컨대 국책은행을 민영화하되 새로운 운영조직을 만들어 정책금융 기능을 맡긴다는 발상은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일관성이 결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KIF를 만들더라도 이를 기존의 정책금융제도 틀 안에서 운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들이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과 정보,그리고 네트워크와 고객관계 등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