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최고 유가에도 증시는 무덤덤?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의 6월 인도분 WTI(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배럴당 123.53달러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최고 배럴당 123.8달러까지 치솟으며 지난 1983년 원유 선물 거래 개시 후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두 배 가량 오른 가격이다.

유가가 이렇게 연일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증시는 유가에 그리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8일 오후 2시 28분 현재 코스피 지수는 전일대비 4.23P(0.23%) 하락한 1849.78P를 기록하며 비교적 안정된 조정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고유가, 고환율 등에 따른 물가상승에 주목하고 정책금리를 현 5.0% 수준에서 동결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골드만삭스도 올해 유가가 150달러선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까지 내놓았지만 국내 증시는 덤덤한 움직임이다. 대우증권의 이경수 애널리스트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고유가가 부담인 것은 사실이지만, 원화 약세, 신용위기 완화, 기업들의 좋은 실적 등 다른 호재들이 워낙 부각되어 상대적으로 유가 강세가 가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화증권의 민상일 애널리스트도 “유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미국발 침체 관련 사안에 관심이 커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게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현재 고유가에 대한 주목도가 낮긴 하지만 향후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문성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신용경색 완화로 인해 전세계 증시가 상승세다 보니 고유가가 상대적으로 등한시되고 있지만, 유가에 민감한 상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면 인플레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증시가 이미 많이 오른 상태라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앞으로는 증시의 밸류에이션상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우증권의 이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으로 유가가 계속 오르면 대외적으로는 무역수지 적자, 대내적으로는 소비위축이 나타날 수 있고, 기업들도 마진율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은 원화 약세로 수출주들을 중심으로 실적이 좋긴 하지만 이제 슬슬 시장이 고유가를 인식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상반기까지는 기업들의 실적과 정부의 성장위주 정책으로 투자심리가 견조하겠지만, 하반기가 되면 고유가가 반영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는 유가의 120달러 선은 용인하고 있는 듯 하지만 만일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서면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화증권의 민 애널리스트는 “고유가가 소비위축과 경기위축에 영향을 줄 임계점이 어디냐가 관건”이라며 “유가가 오르면 비용에 부담이 커져 문제고, 유가가 내리면 경기 하강 신호로 읽힐 수 있어 등락 모두 불안 요인을 담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좋은 쪽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이혜경 기자 vix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