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김정산 < 소설가 >

이제는 돌아가셔서 볼 수도,만질 수도 없는 어머니지만 아주 옛날 고등학생 때 나는 어머니한테 너무 화가 나서 가출한 적이 있었다.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일을 열심히 손보고 있는데 등뒤에서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시며,"에그,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하고 흉을 보셨다.

순간 나는 격분했고,한번 잘해보려는 의지 또한 여지없이 꺾여버리고 말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누구한테든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노라면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란 내 인생의 금구(禁句)가 저절로 떠오른다.

정부와 국민간의 괴리를 요약하면 한마디로 그것이다.

문제의 광우병은 아직 수입되지 않았지만 AI(조류 인플루엔자)는 이미 전국에 퍼져 그 피해가 엄청나다.국토의 서쪽에서 발생한 AI는 동쪽으로 번졌다가 서울과 수도권으로 입성해 수많은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고,지금 이 순간에도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고 있지만,당국에선 여전히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보도에 따르면 대책은커녕 '폐사한 오리와 닭이 분뇨와 함께 썩어가고,출입통제 표지판을 비웃듯 차량과 사람들은 소독도 없이 지나다닌다'고 하니 과연 관계 당국이란 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어찌 비단 AI뿐이랴.무슨 일만 생기면 굴러가는 모양새가 판에 박은 듯이 모두 똑같으니 그게 정말로 큰 문제다.숭례문에 불이 나면 화재진압 시스템과 문화재 관리 시스템에 허점이 드러나고,전염병이 돌면 방역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다.

괴한이 나타나면 전국의 검문 시스템이 갈팡질팡하고,강력 사건이 생기면 허술한 치안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오른다.

해마다 오는 장마와 태풍에도 물난리는 어김없이 반복되고,기상청 예보는 지겹도록 빗나가며,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온갖 기능과 시스템들은 정작 제 기능을 수행해야 할 순간엔 작동하지 않거나 오작동으로 일관한다.

한마디로 우리 정부 당국이 하는 일이 다 그렇다는 것이다.

다 그렇게 미덥지 못하다는 것이다.

할말은 아니지만,만일 지진이 우리나라에 일어난다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해당 부처 어디에선가는 이런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난대책을 꾸준히 점검해야 할 텐데,과연 그럴지도 의문이다.

무슨 사고가 날 때마다 '인재(人災)'라는 탄식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차츰 드러나는 쇠고기 협상과정을 보면 우리측이 분명히 치밀한 대응을 하지 못한 모양이고,이제는 정부 부처간에도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판국에 당국의 검역 시스템을 믿고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자고 하니 국민이 반발하는 건 당연지사다.

쇠고기 문제는 쇠고기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가 전반적으로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제 막 출범한 새 정부로선 자칫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그릇된 일은 빨리 원점으로 돌리고 더욱 결연한 각오로 심기일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근본적인 처방이요,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통상무역 분야와 대외 신뢰도에 다소 상처를 입을지언정 절대다수의 자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은 즉시 수용하고 감당하는 용기도 새 대통령에겐 두고두고 회자될 덕목이다.

이는 훗날의 지도자들에게까지 국민이 원하면 아무리 곤란한 일도 즉시 받아들여 행한 더없이 훌륭한 귀감이 되리라 확신한다.그래서 이 정부가 끝날 때쯤엔 '정부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가 아니라 '우리 정부만큼 자국민을 완벽히 보호하는 나라는 없다'는 믿음을 우리도 한번 가져보고 싶다.

/대하소설 '삼한지'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