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채ㆍ환율 '두토끼 잡기' 고심

최중경 차관 "단기외채 대책 검토"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8년 만에 우리나라가 순채무국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외채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나섰다.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로 인한 달러 부족으로 환율이 단기간에 급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푸는 조치도 동시에 내놓았다.

◆외채 급증은 대외신인도 문제

최중경 기획재정부 1차관은 "단기외채 증가 원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억제할 수 있을지 들여다 보고 있다"고 21일 말했다.선물환 통화옵션 등 외환과 관련된 파생상품과 연계돼 단기간에 급증하고 있는 외채를 줄이지 않으면 국가신인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날 다우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의 단기외채가 급증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면 국가신용등급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오가와 다카히라 S&P 신용분석가는 "한국의 단기외채 포지션이 계속 악화하면 중장기 한국 경제나 국가 신용등급에 대해 재고해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S&P는 2005년 7월 한국의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로 상향조정한 뒤 더 이상 점수를 높이지 않고 있다.

◆환율 급등에 정부 시장개입

외채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이 같은 의지에 겁을 집어먹은 외환딜러들이 달러를 시장에서 사들이자 원화환율이 급등했다.원화 환율이 하락하는 쪽으로 베팅했던 외환딜러들은 정부의 외채 규제가 환율을 급등시킬 것으로 우려해 원화를 투매하는 등 아우성을 질렀다.

외환 관련 파생상품을 팔았던 금융회사들,선물환이나 통화옵션인 KIKO(knock in-knock-out)상품 등에 과도하게 노출된 수출업체들도 비명을 질렀다.

이로 인해 원ㆍ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12원이나 오르는 급등세를 보이자 정부는 5억달러로 추정되는 달러를 매도, 시장 개입에 나섰다.

그 결과 환율은 고점 대비 17원이나 떨어졌다.

이날 원ㆍ달러환율은 전날보다 2원80전 하락한 1042원20전으로 거래를 마쳤다.

정부가 외채를 줄이겠다는 발언을 통해 환율상승을 유도하는 한편 시장개입으로 환율을 안정시킨 것에 대해 외환시장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며 "정부의 단기외채 규제 방침이 환율 상승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기 보다는 대외신인도 하락을 막기 위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환율이 과도하게 오를 경우 물가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지금의 환율 수준을 유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당국이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달러매도 개입을 단행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환율이 오르는 것을 정부가 즐길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잘못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외채 증가 속도 떨어질 듯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말 348억달러였던 대외 순채권이 100억달러 수준으로 줄어들 만큼 빠르게 소진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그 속도가 크게 둔화되고 있다"며 "선물환이나 통화옵션의 포지션을 정리하는 물량이 쏟아질 경우 외채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환율하락 쪽에 베팅했던 선물환이나 통화옵션의 기조가 반대쪽으로 바뀜에 따라 단기외채 증가 속도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한쪽 방향(환율하락)으로 쏠려있던 시장의 분위기가 바뀌면 외환파생상품과 관련된 단기외채는 정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기가 1년 미만인 우리나라의 단기외채는 2005년 말 659억달러에 불과했으나 2006년 말 1137억달러,2007년 말 1587억달러로 급증해왔다.

외환위기 직전이었던 1997년 2분기 말 단기외채가 837억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거의 2배에 이르는 규모다.이에 따라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도 지난해 말 60%를 넘어섰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