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된 촛불 … '시민의 쉼터' 청계광장이 투쟁의 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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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쇠고기 수입반대' 제17차 촛불문화제가 열린 지난 24일 오후 7시께 서울 청계천 광장앞. 주말을 맞아 단체로 청계천을 구경하러 온 중국 관광객들은 서둘러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음악소리에 처음엔 축제인가 해서 호기심을 보이던 이들은 분위기가 심상찮자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버스를 타고 청계광장을 떠났다.같은 날 청계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10명의 러시아 관광객과 3명의 미국인 관광객들도 갑자기 대형 깃발이 펄럭이고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가 청계천에 나타나자 도망치듯 시청 쪽으로 빠져나갔다.
현장학습차 자주 이곳을 찾던 유치원생과 초ㆍ중등학생들도 연이은 시위로 발길을 뚝 끊었다.
도심의 쉼터이자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손꼽히고 있는 청계천이 연일 계속되는 시위와 시위를 빙자한 문화제,축제로 멍들고 있다.청계천은 일상에 지친 서울 시민과 서울을 찾는 외국관광객들에게 조용한 휴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최근 진보와 보수 진영의 고성방가식 시위와 문화제로 인해 시민과 관광객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불만은 청계천 인근 빌딩과 음식점에서 가장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청계천 옆에 위치한 파이낸스빌딩 입주업체들은 "똑같은 음악을 틀어대는 통에 신경이 쓰여 일을 못하겠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파이낸스빌딩엔 약 70개의 크고 작은 외국기업이 입주해 있다.
청계천이 보이는 쪽에 사무실을 쓰고 있는 M사의 한 직원은 "금요일인 23일에도 시위가 있었는데 마이크로 떠드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머리가 아팠다"고 말했다.
A사의 한 직원은 "파이낸스 건물이 서울에서 가장 쾌적하고 교통이 좋은 곳이라서 임대료도 평당 11만5000원으로 비싸지만 소음은 아마 최악일 것"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집시법에 따르면 소음은 상업지역인 경우 주간엔 80데시벨,야간엔 70데시벨 이하이지만 규정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이날 현장 경찰의 답변이었다.
청계천 주변 음식점들은 20일 이상 계속되는 시위로 인해 피해가 크다고 호소하고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배순씨(63)는 "24일엔 평소처럼 오후 10시까지 장사를 할 수 없어서 8시쯤 문을 닫고 집에 갔다"면서 "이곳엔 건물이 뺑 둘러쳐져 있어 소음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음식점주는 "가게 바로 앞에서 문화제 행사가 열리기 때문에 소란스러워서 정신없다"면서 "주문 소리도 안 들려서 손님이 짜증을 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인근 C에스프레소 커피전문점 의 박모 사장은 "시위를 막는 전투경찰 차량 수십대가 길을 막고 있어 손님이 오질 못한다"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출 타격이 심하다"고 말했다.
음식점 원대구탕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길어지고 시끄러우니까 꼴 보기 싫다"면서 "진보든 보수든 모르지만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일요일인 25일 두 아이와 함께 청계천에 구경차 왔다는 송형욱씨(44)는 "청계천엔 물이 있고 가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 때문에 시위 프리존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시위와 문화제는 가급적 넓은 시청광장에서 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고기완/오진우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