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커져가는 '집값 리스크'

박덕배 < 현대경제硏 전문연구위원 >

외환위기 이후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주택담보대출이 빠르게 증가했다.개인들은 저금리를 기회로 주택을 구입하거나,늘어난 담보여력으로 대출을 받아 소비와 자녀교육에 지출하거나 때론 사업자금으로 충당하기도 했다.

금융회사는 당시로서는 블루오션인 주택담보대출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가계와 금융회사의 부동산 보유 비중이 빠르게 늘어났다.현재 가계 총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80%이며,금융권별로 차이는 있으나 은행의 경우 총 대출에서 부동산담보대출 비율은 47% 정도를 차지한다.

이는 1990년 일본의 부동산버블 붕괴 직전인 가계 70%,도시은행 30% 수준보다 높은 수치다.

따라서 개인이나 금융회사들은 주택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할 경우 보유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심각한 '집값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그런데 최근 '집값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말 현재 공식적인 미분양아파트가 13만가구를 돌파했다.

악성 미분양아파트로 여겨지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도 2만가구를 넘어섰다.수도권 지역의 미분양아파트도 2007년 하반기 이후 1만채를 훌쩍 뛰어 넘으면서 급증하고 있다.

물론 업계에서 피부로 느끼는 체감 미분양수치는 이보다 훨씬 크다.

이처럼 미분양 물량이 증가하고,입주지연에 따른 기 분양 잔금이 회수되지 않으면서 현금동원 능력이 취약한 일부 지방 중소건설사의 부도가 현재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기초로 발행된 유동화증권(ABS,ABCP)의 차환 발행이 원활하지 못하면서 관련 건설사의 자금난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먼저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가 나타나면서 경영난에 봉착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부동산 보유 비중이 유난히 높은 비은행 금융회사의 건전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금융시장 내 신용경색 현상이 유발될 수 있다.

은행권 등 여타 금융회사에서도 조기에 대출 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질 것이다.

이럴 경우 가계들은 대출상환 압력에 직면하게 되면서 보유 금융자산을 매각하거나 소비를 감소시킬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 불안과 가계 소비감소 등으로 기업들의 수익성이 떨어지고,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 투자마저 크게 위축될 경우 건설경기는 물론 국내 경기 전반에 걸쳐 침체 현상이 장기화될 수 있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현재의 건설시장 자금경색 현상이 위기로 비화되지 않도록 서둘러 금융권과 건설업체 간의 공존 모색을 적극 중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예측 가능한 PF 부실로 인한 건설업계 위기가 금융권으로 확산되는 것도 방지해야 한다.

또한 미분양아파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 입주자 또는 계약자와 마찰 없이 시장원리에 따른 가격으로 활발하게 거래될 수 있도록 법적ㆍ제도적 개선도 중요하다.

한편 각 민간 경제주체들도 자기 구조조정을 통해 가능한 한 '집값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금융회사는 대출심사 능력을 키워 부동산담보 관행에서 벗어나 신용대출을 확대하고,특히 엄격한 심사와 신용등급에 맞는 가격 정책으로 성장성 높은 혁신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확대해야 한다.

주택 건설업체들도 그동안의 양적인 주택 공급확대가 레드오션임을 인식하고,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 개척 전략이 필요하다.국내에서 쌓은 기술력으로 중국,베트남,카자흐스탄,캄보디아 등 해외 신흥국가 주택시장 개척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또 가계도 무리한 대출에 의존한 주택 구입을 억제하고 투기적인 주(住)테크보다는 건전한 금융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신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