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쇠고기 수입] "업계 합의로 월령표시 기간 늘릴 수 있을 것"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시키기 위한 정부의 복안이 '민간자율규제' 쪽으로 좁혀지고 있다.

양국 정부 간에 이미 체결된 협정을 파기하거나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수입 제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WTO 체제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자율규제 형식으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막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4일 밝힌 것이나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한국 국민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한 데서도 이런 기류가 강하게 감지됐다.

이런 가운데 한.미 양국의 수출입 업체들이 자율규제에 적극 협조할 뜻을 나타내고 있어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협상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한.미 양국은 정부 개입 없는 '민간 자율규제' 형식으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문제를 푼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를 본 상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미국 수출업체들도 물량이 얼마 되지 않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문제로 수출 자체가 막히는 것보다 자율규제를 하는 것이 좋다고 보고 있다"며 "양국 간에 그런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현재 양국 정부는 △1단계로 미국 내 수출업체들이 수출품의 월령표시와 함께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금지를 자율 결의하고 △2단계로 국내 수입업자들도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하며 △3단계로 양국 업체들이 자율협약을 체결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다만 자율결의의 수위와 월령표시 및 수출금지 기간에 대해 양국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는 최소한 '강화된 사료금지조치'가 시행되는 내년 4월까지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금지를 결의토록 한 뒤 그때 가서 연장 여부를 결정하자는 입장이지만 미국 측 답변은 이에 못 미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또 자율협약과는 별도로 미국 행정부가 미국 내 모든 수출업체에 월령표시를 의무화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버시바우 대사는 이에 대해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한국민이 원할 때까지 국내에 반입되지 않도록,그 기간이 얼마가 되든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과 큰 변화들이 미국 산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라벨링(월령표시) 기간의 장기화 여부를 양국 업체가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버시바우 대사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은 재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며,업계 간 합의를 통해 120일로 돼 있는 라벨링 기간을 늘리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업계 자율규제 움직임 본격화


국내 70여개 쇠고기 수입육업체들이 모여 만든 한국수입육협회(가칭)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겠다는 자율 결의를 추진 중이다.

또 육류수입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꿔 30개월 이상 수입금지가 보다 실효성 있게 이뤄지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앞서 타이슨 카길 스위프트 내셔널 스미스필드 등 미국 메이저 수출업체들도 지난 2일 "30개월 이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해 구입 여부를 한국인 소비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월령표시 기간을 120일로 한정한 점,21개 업체 중 5개 업체만 참여한 점,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밝히지 않은 점 등에서 우리의 기대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미국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한국 측 여론을 의식한 조치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진전이라는 평가다.


◆결론은 어떻게 나올까


한·미 양국의 수입.수출업체들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수출금지를 자율결의하는 쪽으로 결론이 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자율결의는 그 성격상 정부당국의 '채찍'을 배제한 채 업체들의 '양심'에 의존하는 것이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미국 업체가 고의 또는 실수로 월령표시를 엉터리로 하거나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출하더라도 수출작업장 승인 취소와 같은 행정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포인트다.

정부가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추가적 조치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협상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우리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미국 정부가 수출업체들에 월령표시를 의무화하고,허위표시를 하거나 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도입하는 조치가 우선 거론된다.

김인식/장성호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