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베트남 위기는 붕괴 위험 알리는 카나리아"

"아시아의 고성장 신화는 끝나는가."

그동안 눈부신 성장세로 세계 경제를 이끄는 한 축의 역할을 해왔던 아시아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과속 경제에 따른 경기 과열에 국제유가와 식량 가격 폭등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겹치면서 아시아 각국의 성장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친디아(중국ㆍ인도)를 비롯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이머징마켓(신흥시장) 국가들 사이에선 물가 급등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시장 위축 현상이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다.


◆성장률 하락에 통화가치 급락아시아 신흥국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는 주범은 인플레이션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인플레이션이 아시아 전역을 위협하고 있다"며 "인플레 압력은 아시아 각국의 경제성장을 저하시키고 나아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은행(WB)은 이달 초 발표한 연례보고서를 통해 "원유와 식료품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 압력이 부쩍 높아졌다"며 올 아시아 이머징마켓 성장률은 6.5%로 지난해(7.8%)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아시아 고성장의 대표주자였던 중국과 인도,베트남 3국의 경제 상황은 아시아 각국이 처한 현실을 대변해준다.

지난 5월 중국과 인도,베트남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7.7%,8.7%,25.2%에 달했다.

세 나라는 인플레이션 대책으로 잇따라 긴축을 강화했다.인도와 베트남은 최근 기준금리를 각각 8.0%,14.0%로 0.25%포인트,2.0%포인트씩 올렸다.

중국은 올 들어 금리를 올리지 않은 대신 은행 지급준비율을 다섯 차례나 인상했다.

주식시장은 주저앉았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 13일 8일 연속 하락하며 2900선이 무너졌다.

인도와 베트남 증시는 올 들어 각각 25%,60% 빠졌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이들 3국의 올 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통화가치 하락(환율 상승) 현상도 줄을 잇고 있다.

13일 베트남 동화 가치는 달러당 1만6601동으로 올 들어 3.6% 하락했다.

특히 최근 베트남 암시장에서 동화가 달러당 1만8500동 선까지 거래되고 있어 평가절하 압력은 더욱 높아진 실정이다.

태국 바트화와 필리핀 페소화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바트화는 이날 달러당 33.17바트에 마감되며 올 들어 가치가 10.6% 하락했다.

페소 가치도 최근 5개월간 약 7.8% 떨어졌다.

도이체방크는 12일 보고서에서 "아시아 각국의 인플레이션 심화로 향후 1년간은 아시아 주요국 통화가치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일 것"이라며 "아시아지역 통화표시 채권 투자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트남 위기,아시아 전체로 확산?

"베트남 경제위기는 아시아 탄광 속의 카나리아다.

유독가스 냄새를 가장 먼저 맡고 탄광 붕괴 위험을 미리 알리는 카나리아처럼 베트남 위기는 아시아 경제위기를 예고하는 전조가 될 수 있다."(뉴스위크 6월16일)

베트남 경제위기가 다른 아시아 신흥국들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997년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외환위기가 동아시아지역 국가 전반으로 전염되면서 아시아 외환위기를 몰고 온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골드만삭스는 이달 초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증시에 대해 '비중 축소' 투자의견을 제시하면서 "올 들어 세계 최악의 부진을 보이고 있는 베트남 경제위기가 전염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팀 콘돈 ING 아시아리서치 대표는 "베트남이 경제위기에 가장 가까이 가 있지만 인근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베트남과 비슷한 조건들을 갖고 있다"면서 "베트남 경제가 독감에 걸린다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도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특히 외환위기 가능성의 척도인 외환보유액 대비 외채 비중을 볼 때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이미 위험수위에 올랐다는 평가다.

시장조사기관인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IU)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현재 각각 589억8700만달러와 366억2500만달러,외채는 각각 1407억2400만달러와 618억3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외환보유액 대비 외채 비율이 각각 238.6%와 168.8%로,베트남(90.9%)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인도도 베트남에 이어 외환위기의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중국 유력 경제주간지인 경제관찰망은 13일 "외환위기 문턱까지 다가선 베트남에 이어 인도가 두 번째 위험 국가로 손꼽히고 있다"며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막대한 재정 적자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에 따르면 인도 정부의 총부채는 지난달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78%에 달하고,이자를 무는 데만 정부 수입의 30%를 끌어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4월 인도 무역적자는 99억달러로 1990년 이후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이에 따라 아시아 투자 비중을 줄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HSBC홀딩스는 12일 "아시아 이머징마켓에서 탈출하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HSBC의 투자전략가 리처드 쿡슨은 "아시아 각국에서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라 금리가 인상될 경우 성장과 기업 실적은 둔화할 것"이라며 "아시아 지역 주식 투자 비중을 제로(0) 수준까지 낮추고 현금 보유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왜 유독 아시아인가

물가 급등세가 전 지구촌을 강타한 가운데 아시아 경제가 유난히 휘청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주요 원인으로 아시아 신흥국들의 인프라 부재를 꼽는다.

자체 정유시설이 부족해 유가 급등을 완충할 수 있는 장치가 없고,금융시장도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통화가치 변동폭이 크다는 얘기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회장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 경제 성장과 인프라 구축 속도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관리 및 대처능력이 상당히 취약하다"며 "최근 아시아지역의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저성장)은 아시아 각국 정부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상태"라고 밝혔다.

국제유가가 현 수준 대비 추가 상승할 경우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제 위기감은 더 높아질 것이란 진단도 나오고 있다.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비산유국인 데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산유국들도 정유시설 부족으로 정제유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병연/이미아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