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유가와 주가의 '황금률' 붕괴와 환율전쟁

최근 유가가 급등하면서 각종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유가와 주가 간의 선순환 효과인 '황금률'이 깨지는 현상이다.지금까지 유가 상승에도 불구,글로벌 증시에 미치는 충격이 작았던 것은 고유가와 금리인상이 겹친 2차 오일쇼크 당시와 달리 미국의 금리인하 등으로 전체 유동성이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산유국과 산유국은 아니지만 이들 국가와의 교류가 활발하고 국부펀드 투자 등을 통해 오일 머니가 유입된 국가를 중심으로 주가가 상승했다.

하지만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서면서부터 이런 황금률이 깨지기 시작하자 이제는 고유가가 원유 공급국과 수요국 모두에 부담이 되고 있다.유가 상승 원인을 놓고 선진국과 일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책임공방이 대표적인 예다.

또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국제협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별 국가별로는 하루가 다르게 뛰는 인플레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그동안 느긋한 입장을 보였던 미국이 인플레 압력을 줄이기 위해 이미 강한 달러화 정책을 천명했다.

유럽도 인플레 안정 차원에서 유로화 강세를 유도하기 위해 다음 달 금리를 올릴 방침임을 시사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고유가로 인해 부담을 많이 받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도 시장개입과 금리인상을 통해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한마디로 자국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일종의 환율전쟁이다. 종전 수출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경쟁적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환율전쟁이 보편화됐던 시대와 달리 최근에 전개되는 환율전쟁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그만큼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가 세계 각국에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가격변수와 달리 환율은 국별 통화 간 상대가격이기 때문에 각국이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모든 통화가 절상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환율전쟁의 결과는 그 나라의 경제 여건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환율전쟁에서 이긴(통화 가치 절상) 국가는 '인플레 안정'이라는 전리품을 얻게 되고,진(통화 가치 절하) 국가는 '인플레 가중'이라는 후유증을 치러야 한다.

세계 각국이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금리인상과 외환시장 개입은 일종의 긴축정책이기 때문에 경기침체 등과 같은 희생이 따른다.

예전에 수출 증대와 경기회복을 위한 환율전쟁이 치러질 때 증시가 가장 먼저,가장 큰 혜택을 본 점을 감안하면 이번처럼 인플레 안정을 위한 환율전쟁이 심해지면 질수록 증시를 비롯한 자산시장에 가장 빨리,가장 큰 타격이 예상된다.

따라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 안정을 위한 환율전쟁은 세계 모든 국가에 손해를 주는 '부(負)의 게임'이다.

세계 각국이 이런 게임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조만간 유가 안정과 통화 가치를 자국 경제 여건에 맞게 적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가 임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튼 최근처럼 고유가가 세계경제에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각국 간에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환율전쟁까지 겹칠 경우 증시에는 부정적인 효과가 우려되고,설령 주가가 오르더라도 업종 혹은 기업 간의 차별화 현상은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올 1월 중순 이후 증시가 최악의 상황에 있을 때 가치에 비해 가격이 많이 떨어진 업종을 중심으로 사두는 '체리 피킹'을 추천하다가, 5월 초부터 재산관리 상담사와 상의하거나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시장 흐름에 부화뇌동하기보다 소신 있는 중장기 투자를 권해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