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규 택 < 삼주SMC 대표 tedhan7@gmail.com >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오랜만에 선친의 묘소를 찾았다.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묘비문은 며칠간의 생각 끝에 내가 직접 썼다.'사랑과 인내로 살다 가신 아버지,저희는 늘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어머니 묘비문에는 '희생과 용기로 살다 가신 어머니'라고 써 넣었던 것이 생각났다.오늘 생각해 보니 왜 남자인 아버지께는 사랑과 인내라는 다소 수동적인 표현을 썼고,여자인 어머니께는 희생과 용기라는 적극적인 느낌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친께서는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6ㆍ25전쟁으로 고향과 가족을 남겨 두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 오셨다.

거친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 새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던지 자식들에게 풍족함을 물려 주지 못하셨다.내 기억 속의 아버지 모습은 소심해 보였고,가족들에게 미안할 때면 어색한 웃음을 지으셨다.아버지의 묘비문을 바라보다 수년 전 보았던 영화가 생각났다.1994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짐 셰리단 감독의 '아버지의 이름으로'다.1970년대 아일랜드 공화국군의 영국에 대한 저항으로 테러가 빈번하던 시기 아버지는 아들이 위험한 일에 가담할까 봐 영국으로 유학을 보낸다.그러나 아들은 런던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현장을 지나다가 누명을 쓰고 경찰의 협박과 고문에 못 이겨 아버지가 공범이라는 거짓 자백을 한다.평소 가난하고 소심한 아버지를 무능하다고 여겼던 아들은 감옥에서도 아버지를 무시한다.

아들에게 멸시당할 때마다 아버지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결국 아버지는 감옥에서 죽고 아들은 누명을 벗고 풀려나면서 아버지의 사랑과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삶의 무게를 느낄 겨를도 없이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다.때로는 자식들이 다른 아버지와 비교할 때 느끼는 비참함과 가족에게 잘해 주지 못하는 서글픔을 가슴에 묻고 산다.그러나 아버지들도 혼자일 때는 지치고 울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자식들은 알까.

자식들에게 대접받으려면 숨넘어갈 때까지 집문서 넘겨 주지 말아야 한다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이 있다.

물질 숭상의 시대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자식들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 묘비문에도 사랑과 인내란 단어가 새겨질까.

우울한 생각을 털어 버리려 자식들이 써 주기 바라는 묘비문을 머리 속에 그려 본다.'자식보다는 자신을 위해,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하다 가신 아버지.저희는 아버지가 아주 가끔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