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So No Hagwon"

남유선 < 국민대 법대 교수 ysnam@kookmin.ac.kr >

지난주 내가 근무하는 대학과 학술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의 한 대학 교수와 저녁식사를 했다.그녀와 난 동갑인 중학생 딸을 두고 있어 화제는 로스쿨이니 대학 특성화사업 같은 공식적인 이슈에서부터 아이들의 취미나 학교생활 등 일상의 주제까지 넘나들었다.오후 10시 무렵 그녀는 갑자기 내게 딸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집에서 숙제하고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So No Hagwon(그럼 학원에 있지 않군요)"이었던 것.미국인이 너무도 분명하게 '학원'을 발음한 데 우선 놀랐다.불과 2주일 남짓한 체류기간에 많은 한국 사람들이 벽안의 미국 교수에게 '학원'이란 단어를 선명하게 각인시켜 놓은 것이다.순간 머리가 휑해지는 현기증을 느꼈다.평소 입시지옥과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에 염증을 느끼던 내 신체의 즉각적 화학반응이었으리라.

듣고 보니 그녀가 이해하는 '학원'은 미국의 통상적 '방과 후 학교(After School Program)'가 아닌,오후 11시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는 '또 다른 학교(Dual School)'이며,그 또래 아이들의 정상적인 신체활동,지적ㆍ정서적 발달에 역행하는 기이한 제도였다.결국 우리는 "Crazy"를 연발하다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이제 '아줌마'에 이어 '학원'이란 한국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오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날 밤 집 전화에는 근처 학원 원장의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님,따님 혼자 저희 학원에 왔는데 등록해 주실거죠? 다른 부모들은 억지로 애를 데려와서 수강시키는데 당연히 해 주셔야 맞죠." 순간 기말시험 준비 때문에 학원에 가야 할 것 같다는 딸의 부탁이 기억났다.동시에 전교 일등을 한 아들을 두고 "아빠 자금력과 엄마 정보력의 산물"이라던 후배 변호사의 소신 발언(?),며칠 전 만난 외국계 투자은행 애널리스트가 "기업들이 처한 최악의 자금난과 경기 체감 와중에도 잘 나가는 두 가지 업종 중 하나는 학원 관련 업종"이라고 한 말도 귓전에 스쳤다.

두 달 전 모 잡지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란 표제로 날 소개했듯이,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나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조차 불투명하게 만들 것 같은 작금의 교육현실이 변하길 간절히 소망한다.그러나 나 혼자만의 각성과 노력,열망만으로는 너무 멀어 보인다.학부모,교육 일선의 실무자,정책 입안자,입법자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