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변호사 1000명 시대…그녀들의 솔직 토크

"사장님들이 다들 골프를 좋아하시니까 제가 빨리 배워야죠."

노영희 변호사(사법시험 45회)에게 최근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의뢰인들이 하나같이 골프를 함께 치자고 제의해오기 때문이다.

블루오션을 찾아 서울 구로구 디지털단지에 사무실을 연 지도 3년째.'여자 변호사들은 실력이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이를 악물고 뛴 결과 자리도 잡았다.

하지만 술접대를 비롯한 어떤 영업활동도 하지 않기로 한 결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 중소.벤처기업 사장들이 주고객인 이상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는 셈이다.
"그럭저럭 잘 버티고는 있지만 왠지 큰 건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골프라도 배워볼까 생각 중이에요."

최근 계훈영 변호사(사시 47회)가 1000번째 여성변호사로 등록하면서 변호사업계에도 여성 파워가 커지고 있다.'여성 변호사=이혼전문'이라는 공식도 깨졌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 변호사들이 늘어나다 보니 이들의 영향력도 법조를 뛰어넘어 정.관계와 학계에까지 미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희소가치'도 사라지면서 남성 변호사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부담도 늘었다.명암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여성 변호사들의 가장 큰 장점은 섬세하다는 점이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 검사 출신의 김학자 변호사(사시 36회)는 "의뢰인들은 대부분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태여서 가능하면 얘기를 많이 들어주는 등 정서적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려 한다"고 말했다.

한번 걸려든 사건은 끝장을 내고야 마는 성미 때문에 남자 변호사들도 두려워한다는 배금자 변호사(사시 27회) 역시 '치밀함'을 여성 변호사들의 비교우위로 꼽는다.

"저는 증거를 하나 제출하더라도 전략을 세워 단계적으로 내는데 남자 변호사들은 느슨하고 엉성해서 치밀하지 못한 것 같아요."

활동분야도 다양해졌다.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김연희 변호사(사시 44회)는 가정의학 전문의 자격증까지 딴 뒤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김 변호사는 "의학계에는 비뇨기과,정형외과 등 전통적으로 여성을 기피하는 분야가 있지만 법조계는 남녀차별이 없는 편"이라며 "꼼꼼하고 집중력 높은 여성의 특성을 잘 살리면 능력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변호사 업계"라고 소개했다.

박정해 변호사(사시 41회)는 출입국과 이민 분야를 전문화하고 있다.

이민자들의 서류작업을 도와주고 비자문제를 해결해 준다.

학회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한다.

법무법인 지평의 김도요 변호사(사시 42회)는 지난해 9월 베트남 호찌민에서 사무실을 열어 해외진출 로펌 첫 여성법인장을 기록했다.

물론 아직도 이혼소송에서는 여성 변호사의 비중이 높다.

부부간의 사적인 문제를 털어놓을 대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을 택하려는 심리가 많이 작용해서다.

그러나 "이혼사건만 갖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시절은 지났다"(김학자 변호사)는 게 정설.

여성 변호사로서 애로사항은 없을까.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출산과 육아문제,사회적 편견 등은 변호사라고 예외는 아니다.박정해 변호사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보면 남성 변호사보다 업무량 등에서 뒤처질 때가 있다"며 "여성 변호사이기 때문에 공격적 변론을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의뢰인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