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씨앗

군것질할 게 별로 없었던 시절,해바라기씨는 아주 좋은 주전부리였다. 앞니 가운데에 해바라기 씨앗을 물고 적당히 힘을 주면 껍질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입속에 퍼지는 그 고소한 맛은 쉽게 가셔지지 않았다. 호박속을 긁어 내 햇볕에 말린 호박씨 역시 한겨울 아이들의 주전부리로는 그만이었다.

생명의 원천이라고 하는 씨앗들은 가정의약품으로도 널리 쓰였다. 태양의 기운을 많이 받은 해바라기 씨앗은 시력이 나쁘거나 몸이 냉한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 호박씨는 젖이 부족한 임산부가 수시로 까먹었고,심한 기침에도 가루를 내어 꿀과 섞어 복용했다. 많은 과일과 채소의 씨앗이 약으로 쓰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포도씨는 당뇨나 시력이 나쁜 사람들이,고추씨는 폐와 기관지가 약한 사람들이,오이씨는 방광염을 앓는 환자들이 즐겨 먹었다. 감씨는 시퍼렇게 멍든 부위에 가루로 빻아 붙였고,수박씨는 신장이나 방광 기능이 약한 사람들이 양쪽 새끼 발가락 옆에 있는 족통곡(足通谷)에 붙였다고 한다.

이러한 씨들이 웰빙 식품으로,또 특수한 성분이 함유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귀하신 몸으로 거듭나고 있다. 식품산업의 고부가가치 핵심 재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 좋은 걸 왜 그동안 소홀히 했을까 후회할 정도다. 대박을 터뜨린 대표적인 경우가 포도씨다. 시장규모가 최근 몇년 새 1000억원으로 커졌다. 고추씨를 사용한 제품이 새로 등장했는가 하면,유채꽃씨를 재료로 한 제품에도 여러 식품회사들이 뛰어들었다.

씨를 주재료로 한 제품들이 인기를 끌자,관련 업체들이 식물씨를 활용한 제품개발에 올인하고 있다고 한다. 품종을 가리지 않고 씨를 가져다 실험을 진행중이다. 웰빙 식품으로 검증만 된다면 단숨에 히트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 작고 단단한 씨앗이 싹을 틔워 새 생명을 키우는 것만도 신비한데 그 속에 아직 발견되지 못한 물질들이 있다고 하니 더욱 경이로울 뿐이다. 씨앗의 재발견이 기대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