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코리안 레시피

김현아 <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 kimha@medimail.co.kr >

요리를 못하는 콤플렉스 때문인지 아니면 요리란 한 나라 문화의 결정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학회 등의 이유로 외국에 나가면 일정이 빡빡해도 그 나라의 요리 강좌 하나쯤은 꼭 듣는다. 때로는 외국인 셰프에게 희롱(?)을 당해가며 못하는 칼질도 해보고,집에 오면 배운 것을 식탁에 적용해 보기도 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요리 학원을 다녀보았다. 그런데 서양 요리와 한국 요리를 비교하면 결정적으로 한국 요리가 불리한 점이 있다. 바로 배운 것을 집에서 해보고 싶은지의 차이다. 한국 요리는 요리 학원에서 진을 빼고 나서 집에 오면 다시 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맛이나 영양 면에서 나물,찜 등의 한국 요리가 세계 어느나라 요리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요리 한 가지를 할 시간이면 서양 요리는 세 가지 정도 준비가 가능하다는 현실 앞에서 번번이 무너지게 된다. 한 예로 음식의 모양을 내기 위한 채썰기 같은 경우 무,당근,고추 같은 일상적인 것은 물론 요리 학원에서는 대추,밤,심지어는 잣까지 채를 친다. 칼질을 멋들어지게 하는 실력이 아닌 다음에는 뚝뚝 따서 넣으면 그만인 서양 요리를 선호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요리 선생님은 무서운 눈으로 "이런 것 칼질도 못하고 시장에서 다듬은 재료를 사다 먹는 여자들은 다 내쫓아야 한다" 고 하시니 힘든 데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더해진다.

그런데 정말 손맛과 정성만으로 한국 요리가 끝까지 경쟁력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조금 걱정이 된다. 한가지 더하면 한정식집도 걱정이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내는 우리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인지,한정식집은 아무리 조촐한 밥상이라도 젓가락도 못 대보고 음식을 물릴 정도로 반찬이 많다. 이렇게 내놓으면 이 식당에 이윤이 남는 걸까. 이 반찬들이 나중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밥 먹으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면 갑자기 밥맛이 떨어지기도 한다.

밥 세 끼를 사먹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요리하는 즐거움이 괴로움으로 변하지 않을 수준까지 한국 요리의 레시피가 변해야 할 것만 같다. 식당도 과감하게 반찬 수를 줄이고 손님에게 찬의 종류를 선택하도록 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 유능하고 창조적인 한국요리 셰프들에게 큰 기대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