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돈 넘치는데 중소기업은 자금난

경기도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A사장은 요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거래 은행에 대출금 15억원을 연장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낮아 더 이상 대출을 연장해줄 수 없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A씨는 "원자재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는데 당장 운전자금 조달도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중소기업들은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향후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은행들이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에 대해 대출 기준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시중금리마저 급등세를 보이고 있어 일부 중소기업과 가계부문의 자금조달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유동성 증가 속 금리 상승


국내 경기는 현재 심각한 하강 압력에 직면해 있다. 지난 상반기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가 급격히 냉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이 상반기 5.4%에서 하반기 3.9%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시중 유동성은 빠르게 늘고 있다. 광의통화(M2) 증가율은 지난 5월 15.8%로 1999년 6월(16.1%) 이후 약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가 악화되고 유동성이 넘치면 이론적으로 금리는 하락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금리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 19일 연 5.66%에서 14일에는 연 6.17%로 한 달도 안 돼 0.51%포인트나 올랐다. 주택담보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지난 2일 연 5.37%에서 14일에는 5.48%로 높아졌다. 2주일 만에 0.11%포인트나 오른 것이다.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걸까.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유동성 증가는 단기적으론 금리 하락 압력이지만 중장기적으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높여 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인플레이션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긴축 정책 가능성과 향후 경제 상황이 불안해질 것에 대비해 미리 자금을 확보해두려는 수요가 맞물리면서 금리가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흑자부도 속출할 수도


한은에 따르면 올 1분기 통화유통속도는 0.72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통화유통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M2로 나눈 것으로 시중자금이 얼마나 잘 유통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통화유통속도는 작년 3분기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경기 하강 압력이 커지고 있고 M2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2분기에는 통화유통속도가 더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통화유통속도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는 증거"라며 "경제 전체로는 유동성이 풍부해도 취약부문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만큼 흑자부도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통계상 시중에 돈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제 주체들 사이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도 "금리가 오르면서 주택담보대출자나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며 "유동성이 늘어도 경기부양이 안 된다는 게 현 시점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경제상황에 대한 처방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신 실장은 "유동성 증가가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며 "대출자산에 대한 건전성 감독 외에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유 상무는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중금리가 더 뛸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금리 인하도 어렵지만 금리 인상은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