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미래] <7ㆍ끝> 맥쿼리 그룹‥ 파격보상ㆍ현지화가 성공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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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말 터진 외환위기의 상처가 아물어가던 1999년 12월 서울.호주의 맥쿼리그룹 인사들은 한국에서 함께 영업할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국내 은행들을 방문했다.
당시는 '맥쿼리'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때라 일부 은행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수소문 끝에 신한은행과 간신히 손을 잡은 맥쿼리는 직원 4명으로,그것도 독립 합작법인이 아닌 신한은행 내 1개 팀으로 출발했다. 그로부터 8년6개월이 지난 2008년 7월.맥쿼리는 국내에 8개 계열사를 보유한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직원 수는 400명으로 출범 때와 비교하면 100배 늘었다. 서울 소공동 한화빌딩 16개층 중 8개층을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금융회사로는 최대 규모다.
◆사회간접자본 민영화 때 국내 진출
맥쿼리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자신의 특기를 최대한 살렸다는 점이다. 1985년 설립된 맥쿼리는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과 관련된 분야에서 뛰어난 장점을 갖고 있는 은행이다. 광활한 땅에 도로나 항만을 대거 건설해야 하지만 이를 모두 정부 자본으로 충당할 수 없었던 호주에서는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사회 기반시설을 짓는 사업이 필요했다. 맥쿼리는 호주 정부의 이런 수요를 간파하고 SOC 분야 최강의 금융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맥쿼리는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해외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극도로 침체된 내수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방안으로 SOC 투자에 민간자본을 적극 끌어들이려고 했던 한국은 맥쿼리의 최고 투자처로 떠올랐다. 맥쿼리가 한국에 들어온 1999년은 도로 항만 등의 건설사업 주도권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던 무렵이었다.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SOC 투자펀드를 꾸릴 수 있는 주체가 필요했는데,당시 국내 은행들은 생존하는 것 자체가 급했다.
고속도로나 철도 건설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뒤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는 방안에 대한 노하우나 확신도 없었다. 평균 10년 이상 돈이 묶인다는 점도 당시 국내은행으로서는 큰 위험부담이었다. 맥쿼리를 제외한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SOC 사업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은행 매각과 기업 구조조정으로 먹잇감들이 쏟아져나오는 마당에 SOC시장에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점도 한 이유였다.
맥쿼리는 한국의 SOC 관련 자본시장에 무혈입성했다. 당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민간자본이 들어오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하며 투자자에게 최소한의 수익률 보장,일부 지급보증 등의 각종 안전장치를 쏟아내던 터였다.
◆규모와 경쟁력은 무관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맥쿼리그룹 전체 순이익 중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이 10% 이상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한국맥쿼리그룹 내에서는 "맥쿼리가 진출한 국가 중 한국이 가장 성공적인 곳"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맥쿼리는 규모가 큰 은행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한국(13위)보다 뒤처지는 호주(14위)에서 맥쿼리는 자산기준 4대 은행의 대열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맥쿼리의 시가총액은 국민은행(21조원)보다 작은 14조원에 불과하다. 이런 은행이 특화 전략으로 한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것이다.
특화전략 못지않게 어떻게 해외에 진출했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맥쿼리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했다. 한국 맥쿼리그룹 임직원 400명 중 93%인 372명이 한국인이다.
맥쿼리는 또 다양한 국내 금융사들과 제휴관계를 맺어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예컨대 투자금융 부문에서는 신한은행과 손을 잡았지만 파생금융과 자본시장에서는 국민은행 우리은행과 각각 제휴관계를 맺었다.
정유경 신한맥쿼리금융자문 대표는 "잘 모르는 개발도상국가에 진출할 때는 독점적 제휴관계를 맺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업무 영역별로 파트너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맥쿼리의 경우 파격적인 보상으로 현지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있다" 말했다.
구체적으로 영업수익의 50~60%를 현지 임직원들에게 돌려줘 인건비 비중이 영업비용의 70%가 넘는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도 맥쿼리의 특징이다. 워커 회장을 제외한 전 임원들은 일반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마주 보고 근무한다. 전담 비서도 없이 일반 직원들과 똑같은 책상에서 일한다. 전용차와 전용 기사도 없다. 모두들 택시로 이동한다. 호주에 있는 글로벌 회장도 전용차 없이 택시를 이용한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