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옷로비 청문회'의 교훈

9년 전 '옷로비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외화 밀반출 혐의로 구속된 대기업 회장 부인이 장관 부인을 통해 검찰총장 부인에게 수천만원대의 '옷로비'를 시도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다. IMF 외환위기의 깊은 그늘이 여전한 터에 불거진 이 사건은 등장인물(고관부인들)과 주제(고가의 밍크 코트)만으로도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민심은 금세 싸늘해졌다. 정권은 위기에 몰렸다. 정치권이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의혹 해소를 위한 국정조사에 들어갔다. 한 달여 동안 온 나라는 소설 같은 얘기로 들썩였다. 결국 특검까지 갔다. 1년여 동안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옷로비 사건의 결말은 허무했다. 남편의 구명을 위해 대기업 회장 부인이 검찰총장 부인에게 고가의 옷을 선물하는 이른바 '옷로비'를 시도했으나 결국 돌려줬다는 게 전부다. '실패한 로비'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사회적 비용은 엄청났다.

이처럼 '아니면 말고식' 국정조사가 적지 않았다. 가깝게는 13대 국회(1988년) 이후만도 국조 요구가 70여회나 됐다. 국정조사가 야당의 대여 정치공세 수단으로 활용돼 온 탓이다. 이 중 실제 청문회가 열린 것은 20여회다.

1988년 5공 권력형 비리나 97년 한보사태,98년 IMF 환란 등을 대상으로 한 나름의 의미 있는 국조도 없지 않았지만 상당수는 정치공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그러기에 국조가 변변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채 의혹만 더 양산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20여 차례 국조 중 보고서 채택까지 이뤄진 경우는 6차례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조사과정에 여야 간 갈등이 빚어져 아예 조사를 마치지 못했거나 조사를 끝내고도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하는 등 파행으로 점철됐다는 얘기다. 국정조사가 끝날 때마다 국조무용론이 제기돼 온 배경이다. 국정조사는 제헌국회 때 만들어져 유신헌법으로 잠시 사라졌다 1980년에 부활돼 오늘에 이른다. 국조는 국정사안에 대한 각종 의혹을 규명할 수 있도록 국회에 부여한 헌법적 권한이다. 헌법 61조 1항은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정부의 독주와 잘못을 바로잡자는 게 근본취지다. 정쟁으로 얼룩졌던 과거 국조는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회가 14일부터 '쇠고기 국정조사'에 착수했다. 3년여 만이다. 여야는 다음 달 4일과 6일 청문회를 각각 개최키로 합의했지만 핵심인 증인채택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청와대 배후설'을 제기해온 민주당은 류우익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증인으로 부르겠다며 청와대를 정조준했고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시절 쇠고기 협상을 벌였던 전직 장관들을 지목하며 노무현 정권을 겨냥하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노 전대통령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당리당략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청문회 무용론을 불러온 과거의 부실한 국조리스트에 이름을 올릴까 벌써부터 걱정된다. 지난 2개월간 온 국민의 관심사가 돼왔던 사안인 만큼 여야는 국민의 잣대로 청문회에 임해야 한다. 이번에도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국정조사 무용론을 넘어 국회를 해산하라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재창 정치부 차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