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건설사] (2) 시한폭탄 PF사업 ‥ 째깍째깍…대출만기 몰린 8월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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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금융권서 통사정…10%넘는 고리로 계약연장지난해 8월 중순. 중견 건설사 A사의 B상무는 아침마다 모 저축은행으로 출근했다. 수도권 택지개발지구에서 아파트 1500채를 짓는 1700억원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은행은 거들떠도 안봐 사업권을 담보로 1년짜리 단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받으려고 제2금융권에 사정하고 다녔다. B상무는 "작년 8월31일까지 사업승인을 신청하면 분양가 상한제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작년 8월 땅작업에 쓰일 자금을 꼭 확보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연매출 4000억원 규모의 이 회사는 1700억원으로 땅을 사서 사업승인을 받은 뒤 해당 부지를 담보로 2,3년짜리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일으킬 요량이었다. 대출자금 일부는 1차 PF를 갚는 데 쓰고 나머지로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올 하반기 분양대금을 기다리는 '자금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대출기한 1년이 다가오면서 일이 꼬였다. 미분양이 우려되는데다 토지매입작업과 인허가 과정이 늦어져서다. 너도나도 대출을 꺼리는 바람에 자체 대금을 동원하고 다른 금융회사로부터 고리를 주며 돈을 빌려야만 했다. B상무는 "그나마 우리는 다행"이라며 "오는 8월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자금 상환이 몰려 있는 건설사들이 대출연장이 안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업계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전했다.
주택사업을 벌일 때 은행으로부터 본격적인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받기 앞서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1년간 담보 없이 짧게 빌리는 '브리지 론' 방식의 대출은 계약 기한이 지나면 연장조차 안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째깍 째깍 시한폭탄 시계바늘이 가는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 한 금융회사 간부는 1년짜리 프로젝트 파이낸싱 만기가 몰려 있는 오는 8월 말쯤 시한폭탄이 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006년 말 50조3000억원에서 2007년 말 70조5000억원,올해 3월 말 73조원으로 불어났다. 73조원 가운데 은행이 43조90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저축은행 12조4000억원,보험사 5조원으로 뒤를 잇는다. 저축은행들의 PF 대출 연체율은 작년 말 11.6%에서 올해 3월 말 14.1%, 4월 말 15.6%, 5월 말 16.0%로 뛰었다. 저축은행의 PF 대출은 전체 여신의 24%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저축은행들은 몸사리기에 들어갔다. C건설사의 자금담당 D전무는 "건축비 상승 등으로 사업수익은 줄어드는데도 제2금융권은 이자를 연 10% 이상으로 2∼3%포인트 올려달라고 해서 이자만 월 십여억원씩 더 주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일부를 빼고는 아파트 분양계약률이 30~40%에 그친 곳이 대부분이어서 건설사들은 PF를 연장하려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가산금리를 얹어줘야 한다. 심지어 시공능력평가 30위권에 든 E건설사는 국내 5대 은행 중 한 곳으로부터 'PF 대출 유보 건설사 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모 시중은행 PF 대출 관계자는 "요즘은 대형 시공사가 지급보증을 하더라도 은행이 직접 아파트 분양가 등을 일일이 따질 만큼 리스크 관리를 한다"며 "1금융권은 지방의 아파트 PF사업에는 아예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비우량주택담보 개인대출로 빚어진 서브프라임 사태가 금융권 부실→집값하락→경기침체로 확산됐다. 우리나라는 주택대출규제→미분양→시행사.시공사 자금난→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동반자살'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호진 기자 hj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