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독도 사태와 ‘기억의 정치’

허구생 <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 >

10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 온 딸을 어느 날 갑자기 이웃사람이 자기 아이라며 막무가내로 떼쓰는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그 작자의 집으로 쳐들어가 한판 붙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감정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가는 경찰서 신세를 지거나 더 큰 망신을 당하기 쉽다. 그러니 침착하게 앞일을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내 딸이 확실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동네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 정리해놓는 것이 보다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번에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사회교과서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사실상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명기한 것은 자국의 역사와 영토에 대한 기억을 국수주의적인 시각으로 재구성하려는 보수 우익세력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어떤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이른바 '집단적 기억'은 개인에 의한 직접적 경험이 아니라 역사교육,영화,텔레비전 드라마,신문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재구성된 간접적 경험이 대부분이다. 집단적 기억은 '현재의 사회적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사실여부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문제는 집단적 기억이 허버트 허시가 말하는 '기억의 정치(politics of memory)'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의 정치란 어떤 특정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가공의 신화를 만들어 내거나 과거의 사실을 왜곡하거나,다른 집단과의 사소한 역사적 갈등을 극단적인 서사적 구조를 가진 불구대천의 관계로 설정해 놓는 것을 말한다. 문명의 시대라는 20세기 인류에 의해 자행된 대량학살 사건들에는 모두 기억의 정치가 개입됐다.

이번 독도 사태가 일부 일본인들에 의해 기획된 기억의 정치라는 측면이 있지만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책략에 말려드는 일이며 그들이 기억의 정치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 달성을 도와주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인터넷에 일본 상품의 목록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또 누군가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도발적 행위를 규탄한다며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한 행위가 우리 국민들의 민족감정과 반일감정을 촉발시킬 수는 있겠지만 극우세력이 아닌 보통의 일본 사람들과 국제사회 여론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항간에는 9월로 예정돼 있는 한ㆍ중ㆍ일 3국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이 이야기되고 있으며 오는 10월쯤 이뤄질 후쿠다 총리의 방한 셔틀 외교의 성사 가능성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독도문제에 대한 국민적 감정을 이용해서 바닥을 친 민심을 끌어올리자는 얕은 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북핵문제 해결과 북한의 개혁 개방 문제 등과 관련해 한반도 주변국들의 협조를 구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점에 서 있다. 그러니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에 감정을 앞세워 일을 그르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주도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독도 문제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바대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리고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입증시켜줄 자료를 확보하고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면 될 일이다. 특히 독도를 영토분쟁의 대상이 아니라 식민 청산의 측면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보통의 일본 사람들과 세계의 여론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