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900원…10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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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硏소장 >
위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난 다음에야 수면 위로 떠오른다. 위기는 그것을 초래하는 내부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코 대중의 인기를 거스르게 된다. 예민한 소수가 위기 징후를 포착하더라도 적절한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도 잘못된 금리와 환율 정책의 결과였다. 달러당 900원 이하의 환율이 너무도 달콤했고 고금리가 주는 고통이 싫었을 뿐이었다. 결국 대내외 균형이 모두 터져나갔던 것이다. IMF 식민지 체제가 들어서고야 환율은 1200,1300원이 정상이며 금리는 20%의 수준이 옳았다는 것이 비로소 고통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경제정책의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반미감정에 도취된 대중이 길거리까지 점령하고 있는 지금의 대란적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위기 구조의 재연이며 고통을 싫어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낡은 '10년 주기설'이 새삼 가슴을 밀고 들어온다. 원화의 대(對)달러 환율 900원,대(對)엔화 환율 700원의 꿀맛에 길들여진 경제구조에서는 금단현상도 심각할 수밖에 없다. "강만수를 죽여라" "경제팀을 바꾸라"는 거리의 함성은 중독자들의 추억이다. 이 거리의 목소리에는 엊그제 "강만수를 교체하라"며 성명서를 낸 100여명의 경제ㆍ경영학자들도 포함돼 있다. 기억 상실증일 뿐이다.
원화는 이미 지난 수년 동안 내리꽂히듯이 경쟁 통화들에 비해 3배가 넘는 나홀로 초강세를 기록해오던 중이었다. 통화들 간의 위치질서는 깨지고 대외 균형은 무너졌다. 조지 소로스는 증시는 재귀적(자기 최면적) 속성을 갖는다고 '썰'을 풀었지만 급등락하는 환율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 착각이 착각을 부르고 허황한 희망이 현실을 호도하는 것을 '재귀적'이라고 본다면 지난 수년간의 환율이 바로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앞장서 나팔을 불었던 반미감정은 "언제나 미국경제는 빚더미에 올라 있고,곧 밑천을 드러낼 것이며,종국에는 달러가 휴지 조각이 될 것"이라는 장기적 전망들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물론 로마의 금화가 결국 쇳조각으로 변해갔듯이 달러도 언젠가는 종이로 되어갈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을 것이라고 해서 지금 당장 삶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로마가 그랬듯이 미국의 붕괴가 곧바로 변방의 부활로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바로 그 장기적 전망들이 집단 무의식을 형성한 순간 시간표는 앞당겨지고 졸지에 달러의 단기적 폭락을 예상케 하는,시장에서의 '재귀적 압력'으로 변화돼 갔다는 점이다. 또 바로 그 때문에 지난 수년 동안 원화 초강세인 900원에서조차 달러 가치의 추가하락을 예상하는 투기적 베팅들이 한국의 은행가와 기업들의 머리를 온통 지배했다.
물론 환율을 한두 개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총합이 국제수지의 적자반전이요,서비스 수지의 사상최대 적자요,외채의 급증이며,인천공항의 넘쳐나는 여행객이요,조단위의 환투기였다. 한국인들의 해외 소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총소비의 5%에 달한 것도 원화 가치의 허황한 고평가에 기인한 것이었음은 설명이 필요없다. 10년 전의 낡은 기억이 새삼 현실로 되는 상황인 것이다. 강만수가 KIKO를 팔았던 은행들을 "사기꾼"이라고 칭했던 바로 그 순간 도취적 거품은 다행히도 기어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일부에서는 기름값과 물가를 핑계대지만 당장의 고통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유를 더 싸게 하라,기름 값을 낮춰라"는 거품의 추억만이 거리를 울리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그 모든 장미 꽃을 누가 피워낼 것인가. 거품이란 것은 그토록 달콤한 것을….
위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난 다음에야 수면 위로 떠오른다. 위기는 그것을 초래하는 내부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코 대중의 인기를 거스르게 된다. 예민한 소수가 위기 징후를 포착하더라도 적절한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도 잘못된 금리와 환율 정책의 결과였다. 달러당 900원 이하의 환율이 너무도 달콤했고 고금리가 주는 고통이 싫었을 뿐이었다. 결국 대내외 균형이 모두 터져나갔던 것이다. IMF 식민지 체제가 들어서고야 환율은 1200,1300원이 정상이며 금리는 20%의 수준이 옳았다는 것이 비로소 고통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경제정책의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반미감정에 도취된 대중이 길거리까지 점령하고 있는 지금의 대란적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위기 구조의 재연이며 고통을 싫어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낡은 '10년 주기설'이 새삼 가슴을 밀고 들어온다. 원화의 대(對)달러 환율 900원,대(對)엔화 환율 700원의 꿀맛에 길들여진 경제구조에서는 금단현상도 심각할 수밖에 없다. "강만수를 죽여라" "경제팀을 바꾸라"는 거리의 함성은 중독자들의 추억이다. 이 거리의 목소리에는 엊그제 "강만수를 교체하라"며 성명서를 낸 100여명의 경제ㆍ경영학자들도 포함돼 있다. 기억 상실증일 뿐이다.
원화는 이미 지난 수년 동안 내리꽂히듯이 경쟁 통화들에 비해 3배가 넘는 나홀로 초강세를 기록해오던 중이었다. 통화들 간의 위치질서는 깨지고 대외 균형은 무너졌다. 조지 소로스는 증시는 재귀적(자기 최면적) 속성을 갖는다고 '썰'을 풀었지만 급등락하는 환율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 착각이 착각을 부르고 허황한 희망이 현실을 호도하는 것을 '재귀적'이라고 본다면 지난 수년간의 환율이 바로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앞장서 나팔을 불었던 반미감정은 "언제나 미국경제는 빚더미에 올라 있고,곧 밑천을 드러낼 것이며,종국에는 달러가 휴지 조각이 될 것"이라는 장기적 전망들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물론 로마의 금화가 결국 쇳조각으로 변해갔듯이 달러도 언젠가는 종이로 되어갈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을 것이라고 해서 지금 당장 삶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로마가 그랬듯이 미국의 붕괴가 곧바로 변방의 부활로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바로 그 장기적 전망들이 집단 무의식을 형성한 순간 시간표는 앞당겨지고 졸지에 달러의 단기적 폭락을 예상케 하는,시장에서의 '재귀적 압력'으로 변화돼 갔다는 점이다. 또 바로 그 때문에 지난 수년 동안 원화 초강세인 900원에서조차 달러 가치의 추가하락을 예상하는 투기적 베팅들이 한국의 은행가와 기업들의 머리를 온통 지배했다.
물론 환율을 한두 개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총합이 국제수지의 적자반전이요,서비스 수지의 사상최대 적자요,외채의 급증이며,인천공항의 넘쳐나는 여행객이요,조단위의 환투기였다. 한국인들의 해외 소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총소비의 5%에 달한 것도 원화 가치의 허황한 고평가에 기인한 것이었음은 설명이 필요없다. 10년 전의 낡은 기억이 새삼 현실로 되는 상황인 것이다. 강만수가 KIKO를 팔았던 은행들을 "사기꾼"이라고 칭했던 바로 그 순간 도취적 거품은 다행히도 기어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일부에서는 기름값과 물가를 핑계대지만 당장의 고통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유를 더 싸게 하라,기름 값을 낮춰라"는 거품의 추억만이 거리를 울리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그 모든 장미 꽃을 누가 피워낼 것인가. 거품이란 것은 그토록 달콤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