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경제개혁의 실종인가

청와대가 8월15일 광복절에 새로운 국가비전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건국 60주년을 맞이해 국가의 새 기틀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비전이 나오면 곧 바로 전국을 돌며 홍보도 할 계획이고,이때를 맞춰 각 부처는 순차적으로 화끈한 후속 비전들을 내놓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벌써부터 8월 말에는 문화관광체육부가 콘텐츠코리아 비전을 내놓고,9월에는 지식경제부가 신성장동력 비전을 내놓는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비전이 과연 얼마나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정권들의 경우 지지율이 떨어진 정권 말에 장기 비전을 제시한 것이 실패였다고 청와대는 진단하는 모양이지만,정권 초라고 해도 다른 정권의 말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지지율이다. 화려한 수사가 넘쳐날수록 비전의 설득력이 떨어질 것은 매한가지다. 오히려 이대로 가면 한국의 미래는 없을지 모른다는 비관적 시나리오가 더 공감을 얻을 만한 상황이다. 문화관광체육부나 지식경제부 등에서 화끈한 후속 비전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콘텐츠 산업에 관심이 많은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은 손자병법을 곧잘 인용한다. 백전백승보다 더 좋은 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고,성(城)을 공격해 이기는 것보다 마음을 얻어 이기는 게 더 낫다는 얘기다. 그게 콘텐츠산업이라면 단기적으로 화끈한 것이 나오기도 어렵겠지만 설사 화끈한 게 있다고 해도 조용하되 치밀하게 추진하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신성장동력도 다를 게 없다. 정권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겠다고 법석을 떨지만 그게 제대로 됐다면 우리는 지금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뭔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새로운 것을 찾겠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10년 이상 매달려도 나올까 말까 한 성장동력을 그르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정작 전 정권과 화끈하게 달라야 할 부분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이 갈수록 퇴색하고 있는 정권의 정체성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불과 몇 개월 전 인수위 때와는 너무 다른 정책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고 있다. 균형발전정책 대신 지역발전정책을 들고나왔지만 균형이란 말만 사라졌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뭔지 모르겠다. '선(先) 지방발전,후(後) 수도권규제 완화''지역이전 조건부의 공기업 민영화' 등을 보면 공기업 민영화,규제개혁 등이 지역발전정책의 하위개념이 돼버린 느낌이다. 공기업 개혁의 실체는 더욱 불분명해져버렸다. 그것도 야당의 반대보다 집권여당의 정치적 논리 때문이다. 좌파정부라도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그런 민영화를 빼고는 무슨 민영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치적 묘수를 찾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묘수 좋아하다가 망한 경우도 많다. 어떤 일을 해야 할 이유가 100가지면 그 반대의 이유도 100가지는 된다. 경제가 어려우면 어렵다고,경제가 좋으면 좋다는 이유로 못하면 결국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규제개혁,법과 질서의 확립,교육개혁 등 다른 개혁 과제라고 기대할 게 뭐가 있나 싶다.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이 비전이나 떠들며 시간을 보내다 개헌 논의에 휘말리면서 그렇게 끝나고 마는 것인가.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