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油시장서 증시로 국제자금 역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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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자금시장에 역류가 시작됐다. "(브라이언 젠드로 미국 ING인베스트먼트 전략가)
유가 폭등이란 글로벌 경제의 대형 악재가 진정 기미를 보이면서 글로벌 자금 흐름에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유가 하락세가 본격화된 지난 15일을 기점으로 '상품시장의 약세'와 '주가 강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용위기로 상품시장으로 몰려들었던 뭉칫돈들이 주식시장으로 복귀하는 '머니 엑소더스'가 가시화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증시가 바닥을 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원유시장 '엑소더스'
23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19개 원자재 상품으로 구성된 로이터-CRB지수는 이날 현재 414.15로 이달 초 고점에 비해 13%나 빠졌다. 원유는 최고가 대비 15% 떨어졌으며 천연가스와 옥수수 가격도 고점 대비 20% 이상 추락했다. 원유시장의 엑소더스 징후도 포착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유통 중인 원유 선물 거래량은 123만건으로 17개월 만에 최저치에 그쳤다. 헤지펀드 등 투기 자금이 시장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 상원의 원유 선물거래 투기제한법 통과 움직임도 투기세력 이탈을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이에 따라 유가가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바클레이스 캐피털의 케빈 노리스 분석가는 "헤지펀드들이 위험이 고조되고 있는 원유시장에서 탈출하고 있다"며 "이는 명확한 매도 신호"라고 지적했다. 리먼브러더스도 이날 보고서에서 "원유의 수요 감소 추세가 확실해지면서 유가가 정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배럴당 125달러가 무너진 유가의 다음 지지선을 120달러로 보고 이 선의 붕괴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미 지질조사국(USGS)의 북극권 원유 매장량 발표도 유가 안정의 청신호로 작용했다. USGS는 북극권에서 채굴 가능한 원유는 모두 900억배럴에 달하며,이는 전 세계가 3년 동안 소비할 수 있는 규모라고 밝혔다. 이어 북극 지역을 공유하고 있는 미국 러시아 덴마크 노르웨이 캐나다 간에 유전 개발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글로벌 증시 바닥론
증시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국제유가 및 상품가격이 하락 반전하고,미국 양대 국책 모기지업체가 고비를 넘긴 데다,미 금융사 부실폭도 예상을 밑돌면서 얼어붙었던 투자심리에 '해빙' 조짐이 보이고 있다. 증시가 바닥 탈출을 시작했다는 분석도 솔솔 퍼지고 있다. 하지만 증시의 본격적인 랠리를 낙관하기엔 불안한 상황이다. 신용경색 리스크는 상존하며 경기침체 조짐도 진행형이다. 신용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 주택경기도 아직 바닥을 확인하지 못했다.
최근의 상승 기류는 '베어마켓 랠리'(약세장 속의 일시적인 반등 장세)라고 보는 시각이 많은 이유다. 크레디트스위스 은행의 앤드루 가트와이트 전략가는 "현재 증시는 불 마켓(강세장)의 시작이라기보다는 베어마켓 랠리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의 경기침체 경험으로 볼 때 평균적으로 고점을 찍은 뒤 13개월간 약세장이 지속됐다"며 "미국 증시의 약세가 지난 9개월간 지속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본격적인 강세장을 예단하긴 이르다"고 덧붙였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