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돈은 네발 달린 짐승, 사람이 좇는다고 못 잡아"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55)에게는 '의사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다. 1996년 잘 나가는 의사(서울대 의대 교수)였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선친의 가업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의사 출신이란 꼬리표에는 '그가 금융회사의 경영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배어 있었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회사는 휘청거렸고 의사 출신 경영자는 큰 시험대에 올랐다. 하지만 금융계의 우려는 기우(祈憂)였다. 지난 4년 동안 매년 3000억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내는 등 재무건전성 지표,고객만족도,이익률 등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성적표를 내놓은 것."2015년까지 총자산 100조원,당기순이익 1조원 클럽에 가입해 100년 초장수 기업의 역사를 쓰겠다"고 포부를 밝힌 신 회장을 광화문 교보빌딩 집무실에서 만났다.

―올해로 회사가 창립 50주년을 맞았습니다. 감회가 어떤지요. "국내에서 50년 이상 장수한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금융회사에서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죠.특히 창업 이후 주인과 이름이 바뀌지 않은 금융회사로는 유일할 거예요."

―12년 전 선친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을 때만 하더라도 주위에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저 역시 걱정과 두려움이 컸습니다. 밤잠을 설칠 때도 적지 않았죠.다행히 운이 좋았는지 회사가 점점 탄탄해지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2조원 정도 까먹으면서 '부실' 딱지가 붙기도 했지만 지난 4년 동안 매년 3000억~4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고 모든 경영지표가 업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임직원들 모두가 흘린 땀의 결과입니다. "―금융회사 중 몇 안 되는 오너 겸 최고경영자(CEO)이십니다. 장단점이 있을 텐데요.

"장점이라면 경영을 못해도 쫓겨날 가능성이 낮다는 것 아닌가요(웃음).오너 경영자는 전문경영인이 흔히 갖고 있는 단기 성과에 대한 부담을 질 이유가 없습니다. 교보생명이 8년간 변화ㆍ혁신 경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대주주 겸 CEO인 제가 초지일관 밀어붙였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너 경영의 단점은 없나요. "제 경험에 비춰보면 기업의 체질을 바꿀 만큼 장기적이고 강도 높은 변화ㆍ혁신을 추진하는 데는 저 같은 유형의 CEO가 유리하다고 봅니다. 물론 오너 경영은 자칫 전횡으로 이어질 수 있지요. 적절한 견제장치가 없고 임직원 모두 '예스맨'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

―의사와 경영회사 CEO에 공통점이 있나요.

"글쎄요. 리스크 관리를 말할 수 있어요. 사람은 중병에 걸리면 명의를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융회사는 사람보다 건강(리스크)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합니다. 금융회사는 한 번 병에 걸리면 치료 불능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보험의 리스크 관리는 언더라이팅(인수 심사)에서 결판납니다. 단 한 건의 부실 계약이 100건의 우량 계약에서 나오는 이익을 갉아먹는 게 보험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험사가 매출 위주로 경영을 하는 것은 지속 성장 경영과는 거리가 먼 나쁜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쁜 성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뜻입니까.

"성장하면 떠오르는 게 매출입니다. 과거에는 매출 증대가 지상과제였고 각 영업본부별 매출 목표,지점별 매출 목표가 주어졌죠.지점장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공계약으로 목표를 채우고 인센티브를 받은 뒤,가공계약을 해지하고 그 손실을 인센티브로 충당하는 식의 관행이 유행처럼 번진 때도 있었지요. '지점장 몇 년 하면 1억원을 빚진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죠."

―교보생명은 어떤가요.

"저희들도 1990년대 후반 나쁜 성장의 늪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10개 계약 가운데 4~5개가 부실 계약이었죠.이런 부실 계약은 대량 해약으로 이어지면서 악순환이 되풀이됐습니다. 매출은 증가하지만 고객 이탈률이 높아지고 부실 계약도 늘어나는 구조였습니다. 고객과 기업 모두에 나쁜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2000년부터 변화ㆍ혁신에 나선 것은 이러한 나쁜 성장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

―임직원들에게 '좋은 성장'이란 화두를 던졌는데 좋은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좋은 성장이란 이해관계자들에게 모두 좋은 성장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에게 경쟁사보다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의 기대를 만족시킴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회사의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늘어나고 설계사의 수입이 높아지고 임직원들은 정당한 보상을 받고 주주는 기대하는 수익을 얻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기업은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됩니다. 좋은 성장만이 이 같은 선순환을 통해 이해관계자 간의 지속 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지요. "

―하지만 보험산업의 신뢰도는 여전히 낮습니다. 무조건 팔고 보자는 식의 영업관행도 여전하고요.

"아직도 타 금융권에 비해 신뢰도가 낮은 게 사실입니다. 은행 예금이나 펀드와 달리 평소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보험 상품의 특성으로 인해 보험권에 푸시(push)형 영업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된 탓입니다. 하지만 보험사 정부,소비자단체들의 노력에 힘입어 많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

―보험산업의 신뢰도를 높일 획기적인 방안은 없을까요?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가르쳐 주시죠.한술에 배부를 수 없듯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보생명은 재무설계사들에게 고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돈은 네 발 달린 짐승과 같아서 두 발 달린 사람이 아무리 좇아가도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돈버는 데 집중하면 고객은 도망가고 고객에게 정성을 다하면 돈은 뛰따라 온다는 마인드를 갖는 게 신뢰 회복의 지름길입니다. "

―교보증권 매각설이 끊이지 않습니다.

"주식투자도 그렇듯이 가치있고 성장성이 뛰어난 기업의 주식은 보유하고 그렇지 않으면 처분하는 게 기본입니다. 매각 합작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 중입니다. "

―경쟁사들은 겸업화ㆍ대형화를 겨냥해 금융그룹화를 꾀하려고 하는데요.

"보유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회사를 보유해야죠.제너럴 일렉트릭(GE)의 경우 수많은 자회사 가운데 1~2등 아니면 다 철수하지 않았습니까. 자본의 효율적 운용이 중요합니다. "

―증시 상장은 왜 뒤로 미뤘습니까. "솔직히 말해 2~3년 전까지는 상장이 시급했습니다. 외환위기 여파로 2조원 이상 까먹었기 때문에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해 재무구조를 좀 더 튼튼히 하는 게 필요했죠.그런데 그 사이 돈을 많이 벌었으며,작년에는 유상증자를 통해 37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서둘러 상장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죠.앞으로 기업가치를 좀 더 높이고,그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타이밍에 상장할 계획입니다. "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