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노사 현장을 가다] (下) 대타협 벤치마킹은 신중히 ‥ '아일랜드 모델' 우리 몸에 안맞아

[유럽노사 현장을 가다] (下) 대타협 벤치마킹은 신중히 ‥ '아일랜드 모델' 우리 몸에 안맞아

"아일랜드의 전체 경제 규모는 독일 철강산업보다도 작습니다. 전체 산업에 적용되는 단일 임금 가이드라인 결정을 골자로 하는 아일랜드의 사회적 대타협은 경제 규모가 작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

아일랜드노총(ICTU)의 폴 스웨니 경제자문관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체제로 기업마다 지불 능력이 모두 다른데 어떻게 단일 임금 인상안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나라가 작기 때문에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아일랜드 인구는 460만명 정도로 우리나라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사회적 대타협은 아일랜드가 유럽의 변방국가에서 최고 부자나라로 탈바꿈하는 데 밑거름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정치 지도자들이 서로 벤치마킹하고 싶어하는 모델이다.

노무현 정권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청와대,한나라당,노사정위원회 등이 아일랜드의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여러 각도로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번 유럽 취재에 함께 한 경제 및 노동전문가들은 아일랜드 모델은 노사 협상 체계,경제 규모,노조 권력의 집중도 등이 너무 달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몸에 안 맞는 아일랜드 모델

"아일랜드에는 반 노조적 기업가들이 많아 노동계는 노조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동계 입장에서는 무엇을 좀 더 얻기 위해 사회적 타협을 벌이는 게 아니다. 생존 그 자체를 위해 타협을 원하는 것이다. "폴 스웨니 경제자문관의 말은 다소 서글프게 들렸다. 노조의 권력이 약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그나마 노조를 인정해주는 사회적 대화틀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아일랜드에서는 사용자가 노조의 단체협상권을 인정하지 않아도 노조는 별다른 저항 수단이 없으며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무노조를 표방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 우리나라 노조는 투쟁을 통해 웬만한 건 다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에 굳이 사회적 파트너십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 같은 것을 통해 얻을 게 별로 없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거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사회적 대타협의 전제조건은 아일랜드처럼 교섭체계가 산별체제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상급 노사단체가 산하 노조 및 회사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져 타결 내용을 노사현장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기업별 노조 중심 체제이기 때문에 상급 노사단체가 임금 및 근로조건에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산하 노조나 사용자들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아무런 제재 수단이 없다. 1993년 한국노총과 한국경총이 단일 임금 인상안을 도출,아일랜드식 사회적 대타협을 성공시킨 적이 있으나 한국노총 산하 노조들의 반발로 대타협의 분위기는 곧바로 깨져버린 게 좋은 사례다. 2004년 초 한국노총 한국경총 노동부 등이 이끌어냈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나중에 흐지부지된 것도 마찬가지다. ◆성공 일등공신은 유럽 통합

아일랜드 경제가 성공신화를 일궈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유럽의 경제통합이다. 스웨니 경제자문관은 "EU(유럽연합) 경제가 단일 시장으로 통합되면서 아일랜드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며 "특히 영어를 사용하는 아일랜드가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외자 유입이 급증했고 그 덕분에 고속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의 사회적 대타협이 경제 회복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등공신'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아일랜드경총(IBEC)의 브렌단 맥긴티 노사관계 및 HR서비스 국장도 "아일랜드의 고속성장에는 1990년대 들어 가난한 회원국들에 제공한 EU의 구조기금이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며 "이때부터 아일랜드의 성공신화가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방 정책에 따른 외자유치 급증,재정의 안정,기업들의 경쟁력 향상,법인세 인하,사회적 파트너십,아일랜드계 해외동포들의 도움도 아일랜드 기적을 만드는 데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더블린/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