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린치 보통주로 전환했지만…주가, 전환가보다 11% 하락


17弗 밑돌면 손실 더 커져

한국투자공사(KIC)는 지난 1월 중순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쏟아부으면서 "월가의 금융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환위기 당시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한국의 우량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냈듯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를 기회로 '이번에는 우리가 미국 금융회사를 인수해 돈을 벌 차례'라는 것이다. 하지만 6개월가량 지난 지금 KIC의 '호기'는 이미 사라졌다. 진영욱 KIC 신임사장은 29일 기자회견에서 "이번에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메릴린치 투자에 대해 '성급한 투자'라는 외부의 비판에 사실상 고개를 숙인 셈이다.

◆무엇이 잘못됐나

KIC의 메릴린치 투자에 문제가 생긴 것은 '첫 단추'부터다. KIC 관계자는 "작년 연말 메릴린치로부터 투자의향을 타진받고 실사를 할 때 메릴린치의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규모를 100억달러 안팎으로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고 말했다. 실제 메릴린치의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자산 상각 규모는 올 2분기 현재 160억달러이며 추가로 54억달러 상각이 예정돼 있다. 당초 KIC가 예상한 것보다 부실 규모가 2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결과는 KIC의 투자성적표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 1월 투자 당시 50달러대 중반에서 움직이던 메릴린치 주가는 지난 28일 24.33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그동안 받은 배당금을 감안해도 KIC는 현재까지 7억8500만달러의 평가손을 봤다. 투자원금의 40%가량을 까먹은 셈이다.

◆보통주 전환의 이해득실

KIC가 이번에 의무전환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같은 평가손실에 따른 부담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KIC는 지난 1월 메릴린치에 투자하면서 "향후 2년9개월간 연 9%의 확정배당을 받고 나중에 보통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권처럼 연 9%의 확정배당을 받는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는 데다 향후 메릴린치 주가가 오르면 추가 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메릴린치는 추가 자본 확충과 신용등급 개선 등을 위해 KIC를 비롯해 지난 1월 증자에 참여했던 투자회사들에 의무전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했다. KIC로서도 주당 52.4달러인 전환가격을 27.5달러로 낮추면 평가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는 법.KIC는 전환가격을 낮춘 대신 연 9%의 확정배당을 포기해야 했다. 또 메릴린치의 추가 자본확충에 따른 주식가치 희석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앞으로의 주가다. 메릴린치 주가는 이미 추가 상각 우려 등으로 전환가격보다 11% 이상 낮은 24.33달러까지 떨어졌다. 지금 수준으로도 KIC는 원금을 까먹고 있지만 앞으로 주가가 주당 17달러 선을 밑돌면 보통주 전환 이전보다도 손실 규모가 커지게 된다. 물론 주가가 오르면 엄청난 차익을 거둘 수도 있다. KIC 관계자는 "메릴린치가 85억~100억달러를 증자해도 주당 장부가치는 22.2달러 수준"이라며 "지금의 전환가격은 괜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계 관계자는 "문제는 앞으로 메릴린치 주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