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레이건처럼 하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이다. 그가 전임자들로부터 물려받은 엄청난 예산적자를 겨우 흑자로 돌려놨을 때의 일이다. 흑자 부분을 어떻게 사용할지 논란이 일자 민주당 의원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중시하는 사회보장에 투입하자고 주장했고,공화당은 감세에 쓰자고 맞섰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은 국채부터 갚으라고 주문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클린턴은 의회에서 사회보장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그래 놓고선 흑자를 국채 갚는 데 써버렸다. 말과 행동이 달랐지만 경제적으로는 세련된 선택이었고,정치적으로도 뭐라고 따질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보기술혁명은 클린턴 시절에 전성기를 맞았다. 우파 빰치게 경제를 알고,멋진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진보,좌파라고 환영 못할 이유가 없다. 우파,보수 쪽 미국 대통령으로는 레이건이 돋보인다. 미국 대통령을 모든 걸 다 건드리는 여우(fox)형과 하나만 들입다 파는 호저(hedgehog)형으로 나눈다면 레이건은 호저형이다. 그는 집권기간 내내 작은 정부를 외쳐댔다. 규제개혁도 그런 맥락에서 추진됐다. 보수,우파의 가장 중요한 철학을 일관되게 외쳤던 것이다. 이것은 뒤에 민주당 클린턴 집권시절 경제호황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평가다.

원칙에 충실한 우파,세련된 좌파라고 하면 뭔가 뒤바뀐 것 같지만 사실은 이래야 정권교체도 맛이 나고, 경제도 보완되면서 굴러간다. 일 욕심 많은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7월21일판 뉴스위크는 '한국,단임제의 덫'이란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대통령 단임제는 1987년 당시 독재자가 다시 등장하는 것을 막는다는 타당한 이유로 채택되었고,그 점에선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단임제는 또한 '의도치 않은 결과의 법칙'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만들어 국가 통치를 '마라톤'이 아닌 '단거리 경주'로 바꿔놨다. " '업적에 대한 강박증'과 이로 인한 실패 위험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미국처럼 대통령 중임제도 아니고 보면 이것저것 다 욕심내다간 정말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 기업인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으니 더도 말고 딱 두 가지만이라도 확실히 해달라고 한다. 하나는 무너져내리는 법과 질서를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이건 사실 정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민주주의 원조라는 영국이지만 한때 다 죽어가던 영국경제를 보고 대처 총리가 작심하고 나선 것도 이런 기본부터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 수석이 정확히 짚었다. 그는 대한상의 주최 제주포럼에서 "한국이 깔딱고개 초입에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 문턱을 넘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4만달러로 가려면 '큰 정부,작은 시장'에서 '작은 정부,큰 시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기회만 있으면 조직 확대를 노리는 공무원들 아닌가. 공기업 개혁,규제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레이건처럼 집권기간 내내 대통령이 외쳐야 한다.

안현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