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왜 정권교체 했는지 답답하다

추창근 <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 >

MB노믹스의 상징이었던 '747'(7% 경제성장,국민소득 4만달러,7대 강국 도약)은 시동도 걸지 못한 채 최악의 역풍(逆風)을 만나 벌써 좌초됐다. 하긴 고유가와 물가 폭등으로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적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마당에 747은 당치도 않다. 지난 대선이 끝난 후 많은 정치학자들은 이명박 후보의 압승이 유권자들의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에 따른 것이라고 규정했다. '반동(反動)ㆍ응징(膺懲)적 투표'라는 분석도 있었다. '먹고 살만 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반발과 염증이 투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명박이어서'가 아니라 '노무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어 고른 지지를 얻은 그의 승리를 설명하기 어렵다. 747 아젠다를 통해 경제 이슈를 선점했고,탁월한 CEO(최고경영자)로서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기 수십년과 함께 한 그에 거는 기대 또한 컸음에 틀림없다. 그에게서 '쉽게 일자리를 구하고,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고,자수성가(自手成家)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을 본 것이다. '경제살리기' 그것만이 이명박 정부의 정당성을 지탱할 버팀목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동력으로 삼은 것이 한반도 대운하,공공부문 구조개혁,규제 혁파,감세(減稅) 등이었다. 이를 통한 기업투자 활성화,성장 잠재력 확충,일자리 창출,소비 진작으로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밑그림이었다. 국민 대다수도 공감했다. 그랬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인심 쓰기 좋은 세금 깎아주기 말고는 진행되는 일이 없다. 대운하는 사실상 물건너갔고,개혁정책의 핵심인 공기업 혁신과 수도권규제 철폐마저 이미 김이 빠졌다.

당장 해치울 것처럼 소란을 떨다 한참 미적거리더니 이제 와서 금융공기업 통폐합과 민영화는 미루거나 없던 일로 만들 태세고,'고양이에 생선가게 맡기듯' 각 부처가 알아서 산하 공기업을 혁신하라며 발을 빼고 있다. 정말 그런 식으로 공기업 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지 묻고 싶다. 공기업과 한솥밥을 먹는 정부 부처다. 세상에 제 밥그릇 깨트릴 어리석은 바보가 어디에 있나.

'전봇대 뽑기'식 규제혁파를 외치다 슬그머니 물러선 수도권 규제개혁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균형발전정책의 틀에 얽매인 지역발전정책은 필연적으로 수도권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전봇대로 치자면 수도권 규제만큼 큰 게 없고,그걸 풀어 첨단산업과 다국적 기업을 유치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던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 '비즈니스 프렌들리'정책을 기대하고 투자 보따리를 풀 채비를 하던 대기업들은 다시 쑥 들어갔다. 촛불에 데인 정권의 소심함이거나 바닥에 떨어진 지지율을 두려워한 보신(保身)주의 때문이라면,이 같은 '개혁 실종'은 포퓰리즘이다. 정책이 원칙을 잃고 포퓰리즘에 휘둘리면 정부의 신뢰 상실로 이어져 어떤 정책도 힘을 못 쓰게 된다. 오죽하면 여당인 한나라당의 홍준표 원내대표마저 "왜 정권을 교체했는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고 탄식했을까.

솔직히 지금 이 정권에 더 떨어질 지지율이 어디 있나.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해병대의 전설적 영웅이었던 체스티 풀러 장군은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자 "문제는 간단해졌다. 이제 우리는 어느 쪽으로든 진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야말로 최고의 기회라는 얘기다. 지금 경제살리기를 위한 모멘텀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는 결국 정권의 정당성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다. 비행기는 역풍을 만나야 더 잘 뜨는 법이다.